Pastor’s Desk

2020년 2월 9일

요즘 뉴스의 중심은 코로나바이러스입니다. 중국에서 시작한 이 전염병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각국은 이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국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미국도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초비상으로 방역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각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가 감염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일상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것은 바로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그 두려움과 공포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어 넣어줘 불행을 미연에 막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넘어서 비이성적인 적개심을 낳는다는 사실입니다. 한번 군중이 비이성적 적개심을 갖게 되면 무엇으로도 설득하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세계 경제 1위의 미국도 겨울이면 계절성 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독감 예방주사가 많이 보급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예방 주사를 맞는데도 불구하고 매년 독감 환자는 백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올해 이미 8천 명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겨울이면 독감 예방에 최선을 다합니다. 손을 자주 씻는 것을 넘어 간편한 손 소독약을 이용하고, 감기 증상이 있으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급적 피하고, 기침을 하게 되면 소매로 입을 막고 기침을 하는 등등. 이러한 예방법은 이제 겨울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계절성 독감을 조심하면서 그 독감이 이제는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신종으로 전염성이 다른 바이러스보다 빠르고 정확한 치료제도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아 조심과 경계의 대상이지만 공포의 대상은 아닙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이곳 뉴욕은 아직 안전함에도 한국 뉴스를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면 마치 우리가 지금 한국에 사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마치 지금 이곳에서도 한국에서 각종 모임을 취소하듯이 우리도 취소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아가 중국 사람들을 경계하게 됩니다. 심하게는 그 사람들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외국 사람들은 중국 사람과 한국 사람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결국 그들 눈에는 중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또 중국 사람을 더 미워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두려움과 공포에서 비롯됩니다. 공포는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만듭니다.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만듭니다. 도살장의 어린 양처럼 꼼짝 못 하고 비명도 못 지르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합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오 14: 27) 불신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살립니다.

또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존재는 소금이며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또 빛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 역할의 바로미터입니다.

빛으로 우리 앞을 비추어 우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빛은 세상을 드러내며 어둠을 몰아내기도 하고 아주 작은 빛은 어둠 속에서 희망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힘들고 어려울 때 더 절실하며 마치 어둠 속의 희미한 등불처럼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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