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 대축일

2024년 3월 31일

주님이 참으로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주님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토록 받으소서.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늘 부활 미사의 입당송으로 부활의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지난 40일의 사순 여정 동안 기도와 회개 그리고 자선의 노력으로 그 끝인 부활의 영광에 도달하신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고 두 팔 벌려 당신의 영광에 우리를 환영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였고, 부활의 영광을 얻었다고 선언합니다. 세례의 물 속으로 들어갈 때,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그 물에서 나올 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 부활의 구경꾼이 아니라 동반자입니다. 그러니 오늘 부활은 주님만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의 영광이고,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그러니 벅찬 가슴으로 외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참으로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오늘 부활을 위해 건너야 했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음을 드러냅니다. 어젯밤 부활 성야의 시작에서 주례 사제인 남 신부님이 부른 ‘파스카 찬송’의 중간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오, 참으로 필요했네, 아담이 지은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 죄를 없애셨네.

   오, 복된 탓이어라!

   그 탓으로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네.

   오, 참으로 복된 밤,

   그리스도께서 저승에서 부활하신 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마저도 기쁨의 이유가 되고 행복한 이유가 됩니다. 그 원죄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축복이 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 오늘은 세상의 지혜가 얼마나 하잘것없는 사상누각과 같은지 여실히 드러냅니다. 오늘 부활은 우리의 고난과 역경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위한 과정이라는 역설의 신비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십자 나무 위에 처절히 매달린 예수님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역설적 축복입니다.

  우리의 잘못을 ‘복된 잘못’으로 승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고, 이를 통해 더욱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오늘 부활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와 용서는 매일 우리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영약입니다. 매일 매일 경험하는 부활의 이유입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파스카 신비 그 자체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에서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합니다. 그로 인해 매일 구원받습니다. 슬플 속에서 웃을 이유 발견합니다. 절망의 암흑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게 됩니다. 고통 중에 치유의 위로를 받습니다.

  마치 무덤을 덮은 무거운 돌 덮개를 밀치고 세상 밖으로 나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오늘 우리를 가둔 어두운 무덤을 박차고 밝은 세상으로 나갑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수필가 피천득 님은 부활절을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네 기도도 이와 같습니다.

 “이 성스러운 부활절에

  저희들의 믿음이

  부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당신의 뜻에 순종하는

  그 마음이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략]

 (피천득, “부활절에 드리는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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