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3년 11월 12일

 

어느새 위령성월인 11월도 중순에 접어들며 연중 32주일을 맞아 연중시기도 가을과 함께 저물어 갑니다. 연중 시기는 총 34주간으로 연중이 끝나며 전례력으로 한 해가 끝나게 됩니다. 이에 대림 시기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그렇게 전례력은 가을과 함께 한 해를 갈무리하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한 해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겨울을 맞이하며 봄을 기다리듯이 주님을 기다리며 시작하는 새해는 언제나 희망의 이유가 됩니다.

  설렘으로 새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올해 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농부가 한 해 농사를 수확하고 난 다음 해를 위해 농기구를 정리하고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여 잘 정리하는 것을 갈무리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갈무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갈무리는 다음을 준비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전례적으로 세밑에 서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올해 50주년 희년을 맞이한 우리 본당도 한 해 동안 기쁨과 감격으로 열어온 모든 행사를 갈무리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에 다음 주일 11시 미사에 50주년을 갈무리하며 마감 감사 미사를 드리려 합니다.

  이는 희년을 맞이한 우리 공동체가 한 해 동안 그 기쁨을 누렸으니, 주님께 감사드리고, 다음 50년을 준비하는 갈무리 미사가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아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사랑 속에서 성장하여 지속해서 주님 사랑과 구원의 산실이 되도록 가꾸고 키우는 공동체가 되길 바라는 간절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만추가 되면 꽃이 지고 난 자리에서 영근 씨앗도 땅에 묻혀 봄을 준비하고, 풍성한 나뭇잎은 고운 단풍이 되어 바람에 떨어져 거름이 되고, 알몸이 된 빈 가지는 봄을 준비합니다. 언뜻 보면 이 모든 것이 죽어가는 것 같아 쓸쓸한 풍광을 비추지만, 사실 그 속은 새로운 삶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우리 본당도 그러합니다. 이제 50년의 희년을 갈무리하며, 분주히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주일 학교와 한국학교에서 열심히 배우고 기도하며 미래를 준비합니다. 청년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세상에서 자신의 포부를 주님의 말씀을 가치관으로 삼아 펼칠 준비를 합니다. 이에 어른들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주님의 가치관을 펼치려 매일 고군분투하시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가치관은 자비를 통한 인류 구원입니다. 나만이 잘 먹고 잘 자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상생하는 세상입니다. 아직도 세상은 혼란스럽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약자를 짓밟는 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나라 간에도 그렇고, 사회 간에도,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수시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런 유혹에 현혹되기도 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듯한 감언이설이 난무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가치관으로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이는 오늘 복음의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처럼 잘 준비하여 인내를 갖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조급하지 않은 인내와 잘 준비하는 지혜는 필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필두로 하여, 세상을 위한 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 가장 버림 받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중요합니다. 이 기도가 우리를 언제나 깨어있게 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태오 25: 1-13)

  만추가 짙어져 갑니다. 이제 주님께 모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죽음을 통한 새로운 삶의 신비를 묵상하고, 내년을 준비할 때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에 우리는 인생무상이 아니라 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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