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3년 7월 9일

오늘은 연중 제14주일로 칠월의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요즘은 마치 한국의 장마철 같은 날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늘에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더위 불편하게 됩니다. 그래도 에어컨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을 미사 시간에 가만히 앉아서 맞으면 추위를 느끼는 분이 꽤 많습니다. 그리니 성당에 오실 때는 얇은 겉옷을 가져오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무더위를 이기는 것이 추위를 이기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쉽지는 않겠지만 주님의 사랑과 함께 짜증보다는 건강한 미소로 즐거운 여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여름을 위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나무를 심을 때 너무 가까이 심으면 성장하지 못하고 죽는 나무가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심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서 심어도 나무들이 성장하면서 가지를 더 높고 넓게 뻗어가고 나뭇잎이 무성해지면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살아갑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도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두면 서로 불편하지 않고 친한 사이를 더 오래 간직하고 나아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언제나 함께 다니며 전교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외딴곳에 혼자 가시어 기도하시곤 하셨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은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며, 주변 관계를 차분히 반추하는 시간입니다. 이를 통해 주님과의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자신이 가는 길을 잃지 않게 됩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려고 하면 서로 힘들어집니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서로 믿어주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서로의 거리를 지켜줍니다. 조금 떨어져 있어도 애틋하지만 조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어깨를 의지하며 가족의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도 전교의 시작 때, 성모님이 예수님의 전교에 개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 함께 가셨을 때, 마침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성모님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답합니다.

  이 대화에서 성모님은 아들의 전교에 이미 개입하고, 예수님은 이에 대한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내십니다. 어머니를 “여인이시여” 하고 호칭하는 데서 느낄 수 있는 관계는 존중하지만, 전교에 있어 일정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내내 예수님은 성모님을 “여인이시여” 하고 부릅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전교에 있어 어머니도 당신께서 구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의 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결국 성모님의 말씀을 들어주십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이는 거리를 두지만, 그 거리는 절대 불변의 거리가 아니라 가변성이 있는 거리라는 사실입니다. 가까워져야 할 때가 있고, 좀 떨어져 있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모님과 예수님의 관계에서 단순히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서 주님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한 분으로서의 관계를 아우른다는 사실에서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로서의 존경과 굳건한 믿음의 상징으로서 본보기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의 거리를 존중해 주는 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입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서로 소유하는 관계는 없습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랑을 가장 큰 사랑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를 소유한 것은 아닙니다. 친구의 생각과 삶을 존중해 줄 때 가능한 사랑입니다. 이는 부부의 관계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지극한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며 인내로 기다립니다.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서 인내를 갖고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길을 인도하는 길라잡이와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오 11 : 28) 예수님의 이렇게 따듯한 초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적당한 거리를 두며 서로 존중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나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관계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 꽃피는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한 구원의 관계입니다.

  또한 누군가에게 나의 조언이 간섭이 될 수 있고, 나의 친절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으면 바로 한발 물러나 주고 기다리는 배려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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