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3년 6월 18일

오늘은 연중11주일입니다. 예수 성심 성월도 중순이 넘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는 말은 이제 진부한 중언부언입니다. 그런데도 일상이 급박하게 진행되니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순간 잊기 쉽습니다.

  예전에 서울에 갔을 때 고속전철을 탄 적이 있는데 전철 주변의 전봇대가 물 흐르듯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뚝뚝 끊겨서 보였습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착시현상이 일어난 것이라 합니다.

  시간이 마치 고속전철이 달리듯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너무 빨라서 정신이 없습니다. 시간은 왜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그런데 어떤 이는 하루가 넘 길다고 느껴진다고 합니다. ‘일일여삼추’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루가 삼년같이 길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이는 너무 빨라서 죽겠다고 하고, 어떤 이는 너무 느려서 죽겠다고 하고…

  그런데 물리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거대한 얼음처럼 얼어서 정지되어 있습니다. 다만 시간은 우리의 관념일 뿐입니다.” 그냥 우리가 변화되어 갈 뿐입니다. 지속되는 변화의 순간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시간은 그래서 상대적입니다. 누구에게는 빠르고, 누구에게는 느리고.

  그렇기에 시간을 속도를 조절하는 주체는 우리입니다. 너무 빠르면 잠시 쉬어 가야 하고, 너무 느리면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40일간의 단식과 기도의 시간은 참 길었을 것입니다. 그 긴 인고의 시간 속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며 배고픔을 잊었고, 구원의 계획을 다짐하며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오시어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시기 시작하자 몰려드는 수많은 군중을 도와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때 마다 예수님은 외딴곳을 홀로 가시어 기도하셨다고 복음은 증언합니다. 쉬어 가시는 것입니다. 정신 없이 빨리 지난 시간을 한 템포 쉬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네 사회는 고속전철보다 더 빨리 지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속도에 맞추다 보면 “바빠서 죽겠다.”고 한숨 쉬는 분이 많습니다. 다른 이들과 속도를 맞추려 하니 쉴 새가 없습니다. 남들 쉴 때, 같이 쉬면 뒤떨어진다고 걱정하거나, 남들 쉴 때, 더 열심히 해야 앞서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결과는 우리 자신이 책임입니다. 시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기준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바로 시간 속에서 우리 삶을 만들어 가는 방법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예수님처럼 될 때 하늘 나라는 완성됩니다.

  예수님을 닮는 방법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즉 실천함으로써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따라쟁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따라 하며 배우듯이…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말씀에 감동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충분히 신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 말에 관한 이야기를 찾다 어느 블로그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백락’이라는 사람은 말을 잠시 살펴보고 준마인지 아닌지를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락일고, 즉 한 번 보고 인재를 알아본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을 잘 보니 왕이 천리마를 구해오라고 명하자 백락은 사방으로 말을 보러 다니다가 소금 수레를 끄는 말을 보고 곧바로 준마임을 압니다. 그렇게 수레를 끌던 비루하게 생긴 말을 끌고 오니 왕이 실망합니다. 그러나 백락의 보살핌으로 그 말은 자신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천리마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 블로거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인재를 키울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 글이 좋아 다른 글을 찾아보니 정작 본인은 세상 사람들 모두를 비판합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된다,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된다. 등등 비판 일색의 블로그가 난무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 자가당착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말씀에 감동하고, 실생활은 세속의 적자생존의 법칙에 충실하게 생존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이 다 그런 거야!” 하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겉으로는 성경의 예수님 말씀을 전하고, 속으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새기는 것은 아닌지……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수없이 몰려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마태오 9: 38)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변하길 바라십니다. 우리가 수확을 할 일꾼이 되길 바라십니다. 일꾼을 보내 달라는 청원 기도 속에는 내 스스로도 포함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믿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다고 한탄할 때, 우리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각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목자이고, 일꾼이며, 주님의 거룩한 지체입니다. 그 일을 할 때는 다음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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