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3년 4월 16일

오늘은 부활 제2주일, ‘자비의 하느님 (Divine Mercy)’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드러난 부활의 신비의 중심에는 하느님의 자비가 있음을 상기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 구원의 시작은 하느님의 자비로부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은 이를 잘 표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 3:16)

  이와 같이 구원의 이유는 하느님의 세상에 대한 지극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발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잊으면 구원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달라집니다. 노력한 만큼의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이 우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가 구원의 자격이 되게끔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부족하더라도 아이가 부모를 따르듯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하느님의 사랑으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능력별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의 은총에 기인한 것입니다.

  남들보다 부족하더라도 그 마음과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나아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운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요한 6:36)

  그러므로 오늘 하느님의 자비 주일은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 보여주신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영광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감사드리며, 나아가 우리도 자비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말입니다. 비록 이 말씀을 따르는 것을 실패하더라도 좌절하거나 멈추지 않고 다시 일어나 실천하려는 노력에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하느님께서 채워 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 사랑이 잘 드러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로 다락방에서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를 주시고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여드레 뒤에 두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거기 있는 토마스에게 자신의 못 자국에 손을 넣어보라고 말합니다. 이에 토마스는 엎드려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20:28-29)

  이렇게 두 번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 넣어 주시며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19: 21-23)

  평화와 성령의 선물의 결과는 바로 용서의 권한입니다. 용서를 할지, 용서를 하지 않은지에 관한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사랑이신 하느님이시니 성령을 받은 이는 자비로이 결정할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우리가 용서의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심판과 저주의 권한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원수라 하더라도 심판하고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용서로 풀지 않으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입니다. 심판과 처벌은 하느님 고유의 권한이고,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믿는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헤아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활 두 번째 주일이며 하느님 자비 주일을 맞아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며 삶의 고난과 슬픔 그리고 수치와 좌절마저도 치유되길 기도드립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주신 평화를 가족과 함께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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