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2년 12월 11일

오늘은 대림 제2주일입니다. 대림 첫째 주일은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정신없이 보내고 나서야 대림의 의미를 되새기며 하나하나 준비합니다. 마음의 준비와 성당의 준비가 함께 이루어집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준비도 마음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우리는 보고 듣는 것을 통하여 느끼며 배우고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듣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보지 않으면 그것이 거기에 있는지 믿기가 힘듭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고 아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직설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비주얼 작업은 우리 모두의 느낌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파란 상록수인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서 우리는 성탄을 느끼고 그 의미를 알아차립니다. 성당에 아름답게 장식된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통해 우리는 이천 년 전 베들레헴으로 떠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마치 두 눈으로 목격한 목격자가 됩니다.

  성당을 장식하고 집안의 리빙 룸에 잘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와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과 그 주위의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그저 방안을 예쁘게 장식하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그 탄생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루카 복음에서 아름답게 서술한 예수님의 탄생 장면이 살아서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고 벅차게 하는 경험을 합니다.

  이제 대림 둘째 주일을 지내며 우리는 예수님 탄생이 가져오는 기쁨과 평화를 상상해 봅니다. 그 기쁨과 평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코비드로 찌그러진 우리의 일상과 이로 인한 사회 경제적 불안감은 우리의 어깨들 짓누르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이러한 불안감을 더욱 깊게 합니다. 지금은 눈먼 이가 다른 눈먼 이를 인도하는 것처럼 세계의 모든 정책이 불안합니다. 경제 분석가들은 다가오는 불황을 대비하라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드디어(?) 뉴욕이 세계 1등을 했다고 합니다. 물가가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이 뉴스를 알려주는 아나운서는 “뉴욕, 축하합니다.” 하고 자조 섞인 웃음을 비꼽니다. 우리 모두가 아직도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다리는 구세주 예수님은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기근이 일고 전쟁이 일어나도 무서워하지 말고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물론 고통스럽겠지만 종내에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가 구원을 받을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불안한 세상에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가지만 무서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오늘을 버티고 내일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 문이 비록 ‘좁은 문’이라도 우리는 당당하게 열어야 합니다. 힘들지만 함께 더불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그 문을 지나면 어두운 구름이 갈라지고 햇살이 비추듯이 우리의 어두운 길을 밝게 밝혀줄 것입니다. 그러면 불확실한 미래는 걱정과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라 호기심과 설렘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대림절은 바로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도 어깨를 펴고 몸을 들썩이며 춤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온몸을 움츠리게 해도 즐겁게 거리를 활보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바로 희망입니다. 소풍을 설레며 밤새 기다리는 아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우리의 기쁘고 평화로운 날을 고대합니다. 그 고대가 설렘을 줍니다.

  지난 금요일 뉴욕 타임스 일면에 학생 합창단이 맨하튼의 성 요한 성당에서 연습하는 사진이 크게 나왔습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합창단이었습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성가를 통해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희망을 전하러 뉴욕까지 온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곧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며 회개하며 주님이 오시는 길을 마련하며 곧게 내라고 세상에 외칩니다. 죄인들은 그들의 죄에 합당한 회개를 하여 그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마태오 3: 1-12)

  그런데 죄인들이 희망이 없다면 회개할 이유가 없습니다. 절망한 이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는 용서를 통한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점을 확인시켜주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용서의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십니다. 죄인들에게 구원의 희망은 바로 회개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길은 세상의 길과 같은 듯 다릅니다. 겉보기에는 같은 길 같으나 다릅니다. 세상의 길은 경쟁을 하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갑니다. 밀어주고 끌어주며 한 사람도 뒤처지지 않게 하려 합니다.

  믿는 이들이 뒤돌아보는 것은 미련이 아니라 뒤처진 이들을 독려하려 함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이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미련이거나 뒷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는 같은 듯 다릅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로 표현되는 사랑의 차이입니다.

  대림 시기의 두 번째 주일을 지내며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사랑에 확신을 갖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을 믿으며 불확실한 미래를 무서워하거나 걱정하기보다 희망의 설렘으로 가득 차길 바랍니다.

  점점 더 깊은 겨울로 들어가면서 날씨는 더욱 차가워지고 세상은 더 메말라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굳은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은 더욱더 따듯해지고 훈훈해지길 바랍니다. 대림의 은총이 우리 가슴 속에서 믿음이라는 녀석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해 주길 바랍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구원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오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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