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2년 7월 17일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입니다. 어느새 칠월의 중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름의 시작이 어제 같은데 어제 초복을 지내고 한여름으로 들어갑니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지만 더위 조심하시고 한 템포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천천히 봐야 보이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가족의 사랑도 그렇고 가까운 친구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천천히 돌아보는 것은 바보 같거나 게으르고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천천히 보고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바리사이들은 쉽게 판단하고 심판하며 비판합니다. 그들의 기준은 생각이 아니라 이미 쓰여진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맹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사랑은 불편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결국 당신 자신을 희생시킵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많은 이들을 위하여…… 그 사랑은 서서히 세상에 드러납니다.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빠른 것이 좋다는 단순한 편견에서 벗어나 느린 것도 좋다는 열린 생각이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타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귀한 손님인 예수님의 방문에 마르타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배고프니 빨리 음식을 달라고 하신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이에 마르타는 마리아가 섭섭해서 예수님께 이릅니다. 나아가 마리아를 혼내서 자신을 돕게 하라고 부탁까지 합니다.

  마르타는 자신의 생각에 빠져 모든 것을 서두르고, 마리아는 천천히 상대방의 의도를 읽어 상대방의 의도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집에 식사를 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오셨다는 사실을 마리아는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미리 짐작하는 소위 “눈치”를 보면 빠르게 결정할 수 있지만 실수할 수 있고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고 결정하면 서로 이해 하는 폭이 넓어져 얼굴 붉힐 일이 없어집니다. 부드러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가족 간에도, 또 친구나 동료 간에도 그렇습니다.

  모든 식물이 빠르게 자라는 무더운 여름 한 템포 천천히 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간이 참 행복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나의 식구, 나의 친구, 나의 동료, 나의 공동체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들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는 누군가 잘못해서 얼굴 붉히고 화를 내고 미워하기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섣불리 판단해서 불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한 번 더 보고 생각하면 서로의 관계에서 섭섭함이나 분노나 미움이나 미안함보다도, 고마움과 든든함과 배려와 자비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본당 일도 요즘은 바쁘게 돌아갑니다. 그래도 정중동의 자세로 서두르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봉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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