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2년 7월 10일

7월의 녹음이 점점 더 짙어 가는 연중 제15주일을 맞이합니다. 녹음이 짙어 간다는 의미는 수은주가 우리 인내의 한계까지 오른다는 말입니다. 무더위는 견디기가 힘들기에 우리의 일상을 느리게 만듭니다.

  “빨리빨리”가 일상인 우리 삶에 느림보는 게으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느림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삶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두려움과 혼란의 연속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느림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더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은 평소에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두려움이나 혼돈이 아니라 더 슬기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무더위에 불쾌 지수가 높아지는 이때에 한 템포 쉬어 가는 것도 영육간의 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의 건강은 나의 식구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만드니 모든 이를 기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름의 왕성한 녹음 아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친구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나눌 수 있는 느림의 여유가 절실한 때입니다. 느린 기도와 느린 생각과 느린 말과 느린 일상으로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면 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느림은 답답함이 아니라 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쉬어 가는 삶은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삶입니다. 그러면 낯선 이의 고통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비의 손을 내밀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행복한 삶이고 하늘나라의 시작입니다.

  오늘 주일 복음은 예수님과 율법 교사와의 대화입니다. 사실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던진 질문에 오히려 자신이 시험을 당하고 결국 예수님의 말씀에 설득되는 반전의 이야기입니다.

  질문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그런데 이 질문 자체가 우리에게 생경한 질문입니다. 요즘 우리 중 몇 명이 이런 질문을 던질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영원한 생명?” 아마도 안타깝지만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100은 사시겠어요.” 하고 말하면 “아이고 그렇게 오래 살면 뭐 해요. 나는 적당히 건강하게 살다가 갈래요.” 하고 답합니다. 그러면 “아직 젊으시네요.” 합니다. 그런데 장난기가 발동하여

 “요즘 평균 수명이 80세 중반쯤 되니까 80 중반까지 사시면 되겠네요.” 하고 말하면 멋쩍게 웃고 맙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죽느냐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이 말을 다시 하면 죽지 않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이 질문을 했다면 “주님 건강하고 풍요롭게 오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하고 물어봤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답은 무엇일까요? 오늘과 같이 똑같은 답을 주셨을까요? 아니면 “건강 음식 잘 챙겨 먹고 근심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고 아내 말 잘 들으면서 살아라.” 하고 말씀하셨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상상할 수 있는 답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모르는 이에게도 그가 필요한 만큼 자비를 베풀어라.”

  우리는 평안한 삶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온전히 평안한 삶은 없습니다. 언제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여러 일로 고민하고 아파하며 숨 가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왜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잊고 살아갑니다. 길 잃은 강아지가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듯이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며 살아갑니다.

  무더운 여름, 녹음의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쉬어 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늘 주일 하루를 나 자신과 내 가족과 내 친구들과 한가로이 보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을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면 어떨까요?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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