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2년 4월 10일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사순 시기의 마지막 주간인 성주간의 시작을 시작합니다. 지난 오 주간의 사순 시기 동안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조명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새로운 삶을 꿈꿔왔습니다. 삶의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고난의 역경을 딛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바로 사순 시기의 궁극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제 성주간을 시작하며 그 희망의 클라이맥스로 다가갑니다. 주님의 부활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우리의 희망은 더욱 커집니다. 특히 지난 이 년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의 공포를 겪은 우리로서 이번 부활은 더욱 크게 우리의 가슴에 다가옵니다.

   아무리 무서운 바이러스라도 우리가 함께 더불어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하여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사이의 욕심과 파괴적 미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한 사람의 욕망 적 결정으로 힘없이 죽어간 학살의 현장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 자신의 아집에 갇혀서 세상을 보게 될 때 세상은 왜곡되어 보입니다. 예수님의 가슴 두근거리게 따듯한 진리의 말씀도 하느님을 모욕한다는 억지 모함이 정당화됩니다. 수십 년간 이웃의 무관심에 홀로 고통을 받던 환자를 치유해주시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악마의 힘을 빌려 고쳤다고 폄훼하는 유다인들의 모습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이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를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해하기보다는 먼저 이해받기를 바라며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틀렸다고 비난하는 모습을 봅니다. 항상 대결의 구도에서 경쟁하며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 세상은 정상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거친 세상 풍파를 두려워하면서도 소위 사회적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모습에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파도를 평정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풍파를 가르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경쟁이 아니라 협조가 더 안전하고 풍요롭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욱 풍요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먼저 이해해 주고 알아주고 안아주는 사랑이 더욱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기꺼이 세상이 던지는 돌을 온몸으로 막아내십니다. 모든 비난을 묵묵히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나무 위에 기꺼이 들어 올려지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세상적 욕망을 죽이고 세상적 미움을 죽이고 세상적 아집과 오만을 죽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부활하십니다.

   그 부활이 오늘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꿈꾸는 삶입니다. 서로가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감싸주는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삶의 모습이 불가능하다고 치부하기보다 가능하다고 믿는 믿음으로 회개한 바오로처럼 우리도 바보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가능하다고 믿고 따르려는 삶을 그려봅니다.

   실패를 딛고……나약함과 약점을 딛고……이것이 우리 본당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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