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2018년 4월 15일

어느덧 부활 3주일이 되었습니다. 주님 부활의 신비를 일상에서 잘 녹여내고 계시는지요. 매주 주일 복음은 당연히 주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인데 각 복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제자들의 부활에 대한 반응입니다.

4대 복음의 예수님 부활에 대한 증언은 바로 “빈 무덤”입니다. 3개의 공관 복음과 서술 형식이 전혀 다른 요한 복음도 공통적으로 주님의 부활의 표증으로 텅 빈 무덤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그 빈 무덤을 발견한 이는 모두 여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인들입니다.

여인들의 등장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불신과 확증의 이중성을 지닙니다. 고대 중근동의 문화적으로 여인의 말은 공적인 증인이 되지 못합니다. 즉 여인들이 증언하는 빈 무덤은 공적으로 그리 믿을 만한 증언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무덤의 형태는 석회암을 파내어 관을 넣을 수 있게 무덤을 만들고 그 입구를 큰 돌로 막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여인들의 힘으로는 들어낼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돌덩이입니다. 따라서 돌이 굴려져 무덤의 문이 열리고 그 무덤이 텅 빈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집니다. 여인들의 힘으로 도저히 옮길 수 없는 무덤 입구의 돌을 누가 옮겼을까? 그리고 발견된 텅 빈 무덤. 예수님의 시신은 어떻게 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마태오 복음은 수석 사제들은 경비병을 매수해 예수의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루머를 퍼트렸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오히려 누군가가 주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베드로 성인께 보고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빈 무덤” 부활의 표증이 됩니다.

그리고 그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각 복음마다 다릅니다. 그런데도 공통된 점은 바로 혼란입니다. 주님의 부활에 직면한 제자들의 첫 반응은 바로 혼란과 불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당신은 대사제들에게 잡혀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되살아나신다는 사실을 수차례 예언하셨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제자들은 그 말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빈 무덤을 보고 천사들을 증언을 듣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즉각 부활을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된 복음은 마르코 복음입니다.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겁에 질려 떨면서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직접 나타나셨을 때야 비로소 믿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부활에 대한 몰이해와 불신에 예수님 당신은 직접 그 상처를 보여주시고 식사까지 같이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믿음에 한탄하시며 “보지 않고 믿는 이는 행복하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루카 복음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시어 성령을 통하여 “평화”를 주시며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그리고 루카 복음의 부활에 대한 특이점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성경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즉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이해하고 가슴 깊이 믿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초개와 같이 자신들의 목숨을 복음을 위해 바칩니다. 이제 더이상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부활의 관문일 뿐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죽음으로 두려움에 떨고 숨어 지내던 제자들은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루카 24: 47-48)” 을 실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우리 삶의 승리 서곡입니다. 아무리 우리 삶이 굴곡이 진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그렇게 살아갈 때 결국 부활의 영광은 우리 각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삶은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바로 함께 더불어 일하고 먹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부처님의 말씀)”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가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서로 비교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며 앞으로 가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부활의 삶이요 교회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오늘 미사의 성찬의 전례를 통한 영성체의 순간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가 우리의 가슴 안에 살아 숨쉼을 증언합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살아있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살아있는 빵입니다.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