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2018년 12월 2일

드디어 전례력 새해 첫 주일인 대림 첫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몸이 움츠려지지만 마음은 다가오는 주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에 대한 기대로 한층 부풀러 오릅니다.

대림은 말 그대로 오심을 기대하는 시기로 기다림의 시기입니다. 그 기다림은 단순히 그리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희망입니다. 물론 새로운 시작이 언제나 기쁜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의 이유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시작은 현재의 익숙함을 떠나는 불편함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떠남이 어쩌면 훗날 추억이라는 이름의 그리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오늘이 어제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처럼 내일이 오늘 보다 낫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복음은 지지난 주일의 마태오 복음과 비슷한 종말을 예고하는 루카 복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종말을 예고합니다. 정말 공포스러운 순간이 오리라는 무서운 예고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오히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오시고 우리는 그분에 의해 구원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즉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까무러칠 정도로 두려운 순간에도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에 순간에도 결코 기죽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고 “늘 깨어기도”함으로서 우리는 “사람의 아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종말을 기대하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결국 우리가 기대를 갖고 기다리는 것은 종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죽음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따라서 종말과 죽음과 절망과 끝은 결국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일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대림의 영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욕스러운 수난을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어 다락방에 움츠리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고 돌아와 보고하였을 때 베드로와 요한만이 그 무덤으로 달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굳게 잠긴 다락방으로 찾아오셔서 제자들에게 평화와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마치 종말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두려움 중에 예수님은오셨고 그들에게 평화와 성령을 주십니다. 그 성령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 목소리는 미미했으나 그 힘은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세상은 말씀으로 차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200여 년 전 그 말씀은 우리 조국에 도달하였고 피 흘림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말씀을 전하였던 수많은 순교 선열들의 신앙이 우리의 가슴에 살아있습니다. 종말은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라 희망의 이유이고 그 이유의 중심에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결국 우리는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구원은 저 높은 곳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풍요와 부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높은학식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높은 지위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낮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물처럼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물과 같습니다. 언제나 낮은 곳을 찾아 끝없이 흐릅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데서 고이면 넘쳐 흐릅니다. 어느 때는 불모의메마른 광야의 땅속에도 스며 흐릅니다. 그리고 낮은 곳에 솟아 오아시스를 만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렇게 흐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성탄은 바로 그 사랑이 흘러 고이고 넘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삶과 죽음의 순간에 서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선택한 평범하고 가녀린 여인의 선택으로 구원은 시작합니다. 그 선택으로 여인에게 성령으로 인하여 아이가 잉태되고 이 세상에 가장 낮은 구유에서 태어납니다. 그 여인이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고,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구세주 예수님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탄생을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그 기대에는 우리 각자의 구원의 희망이 녹아있습니다. 각자 서로 다른 이유로 기다리는 그 구원은 결국 하느님의 나라로 귀결됩니다.

오늘 우리는 깨어 기도하며 각자의 구원과 우리 공동체의 구원과 우리 사회의 구원과 세상의 구원을 기대합니다. “허리를펴고 머리를 들고” 당당하게 기다립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시작과 끝에 항상 함께하시는 엠마누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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