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 대축일

2022년 4월 17일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기에 앞서서, 먼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초대한 것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께 의탁하고 봉헌하며 모든 우크라이나 사태로 희생당하고 있는 모든 피해자들과 형제애를 모르는 이들의 회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또한 지난 성주간 화요일에 브루클린에서 있었던 총기사고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치유를 위해서, 그리고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함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저 개인적으로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은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부활절은 겨울 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망울이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온 세상에 푸른 활력을 전해주고, 진한 향기를 전해주어 금방이라도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것 같은 기대감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은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부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난 3년간 전 세계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을 겪으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피해와 정신적이고 영적인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피해 못지않게, 영과 정신의 피해 역시 크다는 것을 다들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세상은 팬데믹 이전보다 더 분열되었고 갈등의 폭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팬데믹은 거시적 차원의 세계에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도 크고 작은 영향을 분명하게 끼치고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 가정에서는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불편함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웃과 만나는 것도 예전보다 더 많은 노력과 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또한 우리 본당의 많은 분들은 이미 오랫동안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펜데믹으로 인한 이러한 크고 작은 영향은 하느님과 만나는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날이 거듭될수록 미사 참석률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예전처럼 활기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 인간들이 갖고 있는 나약함을 그대로 직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류는 지난 세기에 있었던 두 번의 큰 전쟁을 통해서 배운 것을 망각하고 또다시 분열과 갈등의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인류는 지난 두 번의 전쟁으로 스스로의 나약함과 직면하면서, 더 이상 인간들 안에서 하느님을 닮은 선함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또다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푸르름과 향기를 만끽하기에 앞서서 접하게 되는 이러한 어둠은, 오늘 복음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새벽녘의 어둠을 뚫고 빈 무덤으로 달려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시신이 사라진 빈 무덤은 공허함과 상실감을 더욱 크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요한은 공허함과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었을 제자들 앞에 예수님의 시신을 쌓았던 아마포와 얼굴을 덮었던 수건이 놓여 있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시신이 사라진 빈 무덤과 그 안에 남아 있는 아마포와 수건 그리고 이를 발견한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지 못하고 공허함과 상실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표징이라고 생각됩니다.

  요한은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빈 무덤에서 아마포와 수건을 “보고 믿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제자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을 때,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을 깨닫지 못했었지만, 아마포와 수건이라는 눈에 보이는 표징을 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보고 믿게 되었다”는 표현을 마음속에 잘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십자가를 보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은 성체성사와 십자가를 보는 우리들을 보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게 믿게 됩니다.

  혹시 저와 같이 주님 부활의 푸르름과 향기를 체험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분이 계신다면, 먼저 성체성사와 십자가를 보면서 주님과 잘 만나고 있는지 돌아보고,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이 우리 공동체로부터 퍼져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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