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2019년 1월 6일

성탄의 축복이 새해 내내 여러분의 각 가정에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오늘은 성탄절을 마무리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냅니다. 아직도 성탄절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의 바쁜 생활을 하는 우리는 뭐든지 빨리 그리고 급하게 마무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곳 미국에서도 요즘은 추수 감사절이 끝나자마자 크리스마스 캐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거리에는 성탄 장식으로 화려해집니다. 그리고 12월 25일이 지나자마자 크리스마스 캐롤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쓰레기가 되어 나뒹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26일만 되어도 Merry Christmas! 라고 인사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25일이 성탄절의 시작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성탄절 동안 성탄의 신비를 성모님처럼 “마음에 새기고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신비가 우리의 일상에서 드러나고 한 해 동안 그 신비가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 숨 쉴 때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은총 안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현 대축일을 예전에는 “삼왕 축일” 또는 “작은 성탄절”이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지중해 유럽이나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는 삼왕 축일 (Three King’s Day)라 부르고, 이날이 오히려 예수님 탄생일인 12월 25일보다 더 성대하게 지내며, 이 날 성탄 선물을 나누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세분의 동방박사가 갓 태어난 예수님을 찾아내어 가지고 온 선물, 즉 황금,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바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현한 동방에서 온 사람들은 성서적으로 보면 왕이 아니라 현인들로 보거나 점성술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여 현재는 동방박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삼왕 축일이 아니라 동방박사들의 알현으로 그들이 받은 계시를 멀리 동방에서도 알게 되고 확인한 날이기 때문에 “주님 공현 대축일”이라고 합니다. 이는 공현, 즉 공적으로 드러났다는 말로 이는 “드러내다” 라는 뜻의 그리스어 Epiphaniein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참고로 영어로는 Feast of Epiphany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께 잉태될 때 그 소식은 성모님께 따로 사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그 소식을 알려줍니다. 이에 요셉은 조용히 임신 사실을 덮고 파혼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성모님을 아내로 받아들이고 아기 예수까지 당신 아들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요셉과 마리아 가정의 사적인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의 한 구유에서 예수님은 탄생하셨고 벌판에서 천사를 만난 목자들은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났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루카 2: 10-11)

목자들은 즉시 구유의 아기 예수님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아기를 부모와 동네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이 신기한 이야기는 이제 한 가정을 벗어나 동네 이야기가 됩니다. 점점 커지는 구세주 탄생 소식은 성모님의 상황을 루카 성인은 이렇게 전합니다. “이 소식을 마리아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한 개인의 계시에도 동네의 계시가 되었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은 점점 더 구체화 되어갑니다. 이것을 완전히 공공연히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동방박사의 알현입니다. 이는 어느 시골 동네에서 일어난 해프닝이 아니라 유대의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쫓아 머나먼 동방에서부터 아주 작은 시고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방 박사들은 별을 쫓아 예루살렘까지 왔을 때 왕궁으로 먼저 갑니다. 궁에서 헤로데왕을 만나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려줍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왕은 왕궁에서 태어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왕은 왕궁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왕의 탄생은 이제 이스라엘 전체의 소식이 되었습니다. 그 소식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왕궁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시골 베들레헴의 가축 구유에 누워 있었고 이를 동방박사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임금에게나 바칠 법한 선물을 바칩니다. 황금, 유향과 몰약. 황금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귀중한 금속입니다. 그래서 왕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황금을 드렸다는 것은 단순한 금전적 가치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께서 새로운 왕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유다왕의 탄생이며 궁극적으로 왕 중의 왕 즉 세상의 왕이신 구세주이심을 드러냅니다.

향료 또한 고래를 막론하고 값이 비싼 귀한 것입니다. 향료는 제사 의례에 사용됩니다. 이에 향료인 유향은 제사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자로서의 왕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나라의 왕으로서 우리를 하느님의 나라로 구원하십니다. 따라서 제사장 즉 사제로서의 권한도 갖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몰약은 시스터스 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기름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 왕과 예언자들에게 기름을 부어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렸습니다. 즉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이”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그리스어로 christos입니다. 바로 구세주로 번역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몰약은 우리가 세례나 견진을 받을 때 쓰는 크리스마 성유에 들어갑니다. 크리스마 성유를 우리 머리 위에 바름으로써 우리도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왕, 사제, 예언자 직분에 참여하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동방 박사로부터 받은 세 가지 선물은 바로 예수님이 왕으로서, 사제로서 그리고 구세주로서의 정체를 드러내는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은 바로 세상에 예수님의 정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대의 사건입니다. 일개 가정사나 동네일이 아닌 세상을 바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날입니다. 따라서 오늘 구세주 탄생을 경배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처럼 이 엄청난 사건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신앙생활의 기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곰곰이 묵상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자신의 삶의 가장 중요한 사건임을 일상에서 우리를 통하여 드러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탄이 기쁘고 설레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이 바로 임마누엘 즉,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쁘고 설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을 드러나는 날이기에 기쁘고 설레는 날입니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에 드러난 주님의 정체에 우리도 주님의 신비로운 지체로서 참여한다는 사실이 이제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알려줍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한해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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