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

2022년 9월 11일

오늘 연중 제24주 주일이며 또한 9월 11일 오늘 우선 9-11에 목숨을 잃은 많은 영혼들이 주님의 영원한 안식을 얻기를 기도드리며, 또한 그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기억하며 예수 성심께서 그 들의 슬픔을 위로해 주십사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잘못된 하느님에 대한 이해와 열정으로 이웃을 해치는 일이 더 이상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지지 않도록 사랑과 자비의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드립니다.

  오늘 일독서 탈출기에서 모세가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때에 이스라엘은 산 밑에서 하느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하느님이라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큰 죄를 짓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그분의 영광과 전지전능하심을 직접 체험 했으면서도 주님 곁에서 큰 오류를 범하는 죄를 짓습니다.  하느님께서 벌하시려 할때에 모세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용서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의 청을 받아들이셔서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시며 다시 사랑의 계약을 맺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 1서의 말씀에서 자신이 개종 전에 잘못된 종교의 열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학대하고, 박해했던 가장 큰 죄인이 예수님의 자비로 용서를 받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새로이 태어나 예수님의 사도가 된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자비로이 받아주시는 것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투덜거리는 것을 들으시고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비를 세 가지 비유를 들어 가르치십니다. 아흔 아홉 의인들 보다 한 명의 죄인이 회개해서 주님께 돌아올 때 더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 세 가지 비유 중 두번째 비유에 대해 이야기 할까 합니다.

  두 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은전 한 닢에 대한 비유입니다. 한 여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는데 한 닢을 잃어버린것을 깨닫고 집안에 불을 켜고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찾아 나섭니다. 고생 끝에 잃어버렸던 은전 한 닢을 찾고는 기뻐 즐거워하며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는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여인이 아홉 개의 은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한 개의 은전을 찾으려고 무단히 노력하는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해 가르치고 계시는가 잠시 생각해 봅시다.

  은전 한 닢에 새겨진 이미지와 문구로 그 값어치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값어치는 내가 가지고 있든지, 잃어버렸던지, 변함없이 은전 한 닢입니다.

  오늘 이 두 번째 비유를 묵상하면서, 어떻게 은전의 비유가 죄인의 회개에 대한 가르침인가 묵상하게 됩니다.

  은전에 새겨진 모양과 이미지로 그 값어치가 정해진 것처럼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의 영혼 안에 새겨 넣으신 이미지가 있습니다. 선하고,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우리 모두에게 새겨 주셨습니다. 그 모습은 다름 아닌 바로 하느님의 모습을 새겨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을 만드실 때 말씀하시기를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 26)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습이 새겨져서 태어났습니다.

  올바로 살던 죄를 짓고 살던 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습은 절대 사라지지도 않고 인간의 존엄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주님께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대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도 새겨진 하느님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한 죄인 인간의 존엄성과 하느님께서 보시는 그 생명의 값어치는 변함없이 소중한 것임을 오늘 두 번째 비유에서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는 죄로 잃어버린 한 인간이 회개해서 주님의 품 안에 돌아오면 하느님께서 영혼 안에 새겨주신 당신의 그 모습을 되찾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한 죄인이 죄의 회개를 하며 용서를 받아 그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게 우리가 평생 노력하며 주님께 충실 한다면 하늘의 기쁨은 얼마나 더 커질까 상상하며 묵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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