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

2021년 7월 18일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따라 살라고 불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표현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왕직과 사제직과 예언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직은 굴림하고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보여줬던 것처럼, 스스로 낮고 비천한 모습이 되어서 봉사하고 섬기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제직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제사장이 되고, 제물이 되고, 제단이 되어서, 하느님께 봉헌한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언직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서 말과 행동으로 선포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에 따라서 왕의 모습으로, 사제의 모습으로, 예언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당신을 드러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기계처럼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셨던 사랑으로 기꺼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면서 당신의 길을 걸어갔는지 알게 됩니다. 복음 선포를 하고 다시 돌아온 사도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것을 아시고는 그들에게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사람들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 모습을 지켜보던 예수님께서 많은 군중을 보시고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에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 같아서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는 표현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께 받은 직무를 어떤 마음에서 수행했는지에 대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를 목말라하지만, 스스로는 어떻게 하느님께 다가설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군중을 보면서, 가엾은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하느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사제들에게 이야기했었던,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십시오.”라는 말씀과 김대건 신부님께서 순교를 앞두고 조선의 교우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내용이 함께 생각났습니다.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십시오.”라는 교황님의 당부나 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 모두,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간절히 바라는 신자들의 마음을 느끼고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연중 제16주일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먼저 사제들이 예수님께서 느꼈던 그 마음을 느끼고 “양 냄새 나는 목자”,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님께서 지녔던 마음을 지닐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직무사제직으로 불린 신부들만이 아니라, 세례받은 모든 신자들도 똑같은 주님의 사제직에 불림 받았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까운 이웃들 중에 주님의 가르침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예수님과 같이 가엾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함께 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마르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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