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일

2021년 6월 20일

  최근 몇 주간 주일 복음으로 마르코 복음 4장을 듣고 있습니다. 먼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1-20)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밭의 상태에 따라서 어떤 씨앗은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 반면, 어떤 씨앗은 성장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도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그대로 죽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마르 4,26-32)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밭에 뿌려진 씨앗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씨를 뿌린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 모르고,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 나라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어떤 씨앗보다도 작은 겨자씨가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마르 4,31-31)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나에게 뿌려진 하느님 말씀의 씨앗도 하느님 나라의 큰 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처럼 마르코 복음 4장은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의 능력과 힘으로 하느님 나라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에서 성장하고 있고, 완성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으로 들은 마르코 복음 4장의 마지막 단락은 조금은 다르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에게 하느님 나라에 관해서 설명하신 뒤에  고단하셔서 그런지 거센 돌풍으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는데도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셨던 “고물”의 영어 단어는 “stern”인데, 이는 “노를 젓다”는 뜻의 “stir”에서 생겨난 단어입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센 돌풍이 일어 배에 물이 거의 가득 차게 되었는데도, 배의 방향을 바꾸기는커녕, 노 젓는 자리에서 주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하지 않으십니까?” 하며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 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나무라는 듯한 이 말씀을 듣고, 자칫 어려운 순간에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하소연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운 것은, 예수님께서 배를 조정하는 “고물”에 누워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예수님께서는 배를 돌풍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바람을 꾸짖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셨습니다. 배를 조정하여 돌풍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만을 생각했던 제자들에게, 바람과 호수를 조정하시는 예수님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복음은 제자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하고 서로 말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자들의 입장에서 아직까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완전히 모르는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바로 직전에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뿌려진 사람의 마음의 밭이 중요하다는 설명을 들었고, 하느님 나라가 자신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과 힘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자라난다는 것을 들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는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거센 돌풍이 이는 호수 한가운데에서 바람과 호수를 다스리는 모습을 보자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이고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해가는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돌풍이 불곤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과 같이 엄청나게 거센 돌풍을 체험하기도 하고, 일상에서 겪게 되는 작은 유혹과 같은 쉽게 무시되곤 하는 돌풍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시련과 고통을 겪을 때 주님께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믿고, 부족한 내가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해달라고 청하며, 하느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뤄지기를 청하면서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 아니면 침묵하시는 하느님을 의심하면서 마음 졸이고 걱정과 근심에 쌓여서 하느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람과 호수까지도 복종시키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으며,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성장시키고 완성시키는 일에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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