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일

2021년 6월 13일

마르코 복음 4장은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진리에 대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첫째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그리고 두 번째는 등잔의 비유입니다. 오늘 복음은 세 번째; 등잔의 비유와 네 번째;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고 나면, 땅이 저절로 뿌린 씨를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어 수확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비유입니다. 그리고 겨자씨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로 겨자씨는 세상에서 가장 작을 씨앗이지만 땅에 뿌려 자라나면 그 어떤 풀보다도 더 크게 자라 새들이 그곳에 깃들인다는 비유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마르코 4,12) 그리고 비유 마지막에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그럼 과연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며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인가 하고 의심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마르코 복음의 비유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4,12절의 뜻을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르코 4,12절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는 예수님께서 이사야 6장 9-10절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사야 6장은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우찌아 임금은 나병으로 고생하다 죽던 해에 하느님께서 임금의 대변인으로 임금의 편지, 공문, 서류, 등을 책임지고 있었던 이사야를 당신의 예언자로 쓰시기 위해서 부르십니다. 그는 임금의 대변인으로 일하며 많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으로 살면서 왕 중의 왕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반성하며 고해합니다. 그럴 때, 사랍 중 한 천사가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이사야 입에 갔다 대며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이사야 6,7) 하고 선포합니다. 그러고 나서, 하느님께서 누구를 보낼까 물으시니, 이사야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사야 6,8)라고 주님께 대답을 드립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너희는 보고 또 보아라. 그러나 깨치지는 마라.’ 너는 저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 귀를 어둡게 하며 그 눈을 들어붙게 하여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 (이사야 6, 9-10) 그러자 하느님의 뜻을 이해한 이사야는 언제까지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봅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은 외부의 침략을 받아 모든 이스라엘이 흩어지고 나라는 황무지가 되는 정결 예식을 거쳐 새로이 태어날 때까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잘못에 단죄가 아니라 참회의 시간을 통해 다시 정결해질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면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그때까지 모든 사람은 회개와 정결 예식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끝나, 하느님과의 계약에 다시 참여할 때 이 가르침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회개와 정결 예식의 시간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고, 새 계약은 주님의 부활입니다.

오늘 일 독서를 읽어보면 하느님께서 향백나무의 꼭대기에서 가장 연한 순을 꺾어 가장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어 그곳에서 훌륭한 향나무로 자라 많은 열매를 맺고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일 것이다. 에제키엘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입니다. 그분은 가장 연약한 존재로 수난의 고통으로 꺾이셨고, 골고타 언덕에 십자 나무에서 죽음을 선택하셨으나, 부활의 영광을 받아 영원한 생명의 나무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겨자씨의 비유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어 새로 태어나면 풀 중에서 가장 크고 풍성해서 하늘의 새들이 모여든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도 예수님 자신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코로나로 작년부터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우리는 이 시간 동안 기도와 묵상 그리고 자선을 행하는 기회로 이 어려움을 보내면서 새로운 영적 회개와 정화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형제자매들과 함께 다시 주님의 품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이 수난의 시간을 주님의 자비와 사랑의 시간이 되게 채워 주셨습니다. 아마도 이 시간이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시간이 아닌가 묵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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