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일

2023년 6월 18일

사도행전 4장을 보면, 베드로가 최고 의회에서 유다 지도자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도 4,12 참조)라고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증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베드로 사도의 증언을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가르침과 행적을 따라서 살 때, 구원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30년 남짓한 짧은 시간을 살았고, 그중에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신 기간도 3년 남짓밖에 되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요한 21,25)고 한 요한의 언급처럼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행적을 찾고 그것들을 따라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크게 묶어서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교회는 이를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섬기는 왕으로 오셨다는 의미에서 “왕직”이라 부르고, 두 번째는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하느님 말씀을 전하러 왔다는 의미에서 “예언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스스로 제물이 되고 제단이 되고 사제가 되어서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 자신을 봉헌한 참된 사제라는 의미에서 “사제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삼중직무라고 부르는 왕직과 예언직과 사제직은 세례성사를 통해서 모든 신자들이 받은 의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과 성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삼중직무가 무엇인지 기억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해야하는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왕직과 예언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제직은 신부님들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하고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분명히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은 신부님들만 할 수 있는 일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제직은 제사장의 역할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희생 제물로 바치면서 사제직의 참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다시 태어난 우리들 모두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제직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들 모두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제직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보여주신 겸손과 비천함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나서,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께서 보여주신 겸손과 비천함을 제자들이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오늘 복음의 시작에서 보여준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던 군중을 보시며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37 참조)고 전하면서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8)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며,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하셨습니다.

  연중 제11주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예수님께서 12제자에게 주신 특별한 권한이 아니라, 군중을 보시며 가엾은 마음을 느끼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겸손해지고 스스로 비천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서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 비천해 지면서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먼저 이웃에 대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게 해달라고 청하도록 합시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하면 되면, 저절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저와 같이 부족한 사제들이 주님의 겸손함과 비천함,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해달라고 함께 청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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