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21년 9월 19일

오늘 미사는 우리 본당의 주보성인인 성 정하상 바오로와 첫 번째 사제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미사로 봉헌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신앙을 위해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신앙 선조들의 모범을 기억하고, 그들이 지녔던 신앙을 본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기 위해서 9월 달을 순교 성월로 지냅니다. 특별히 9월을 순교 성월로 지내는 것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신앙 선조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많이 태어난 날이 9월 20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월 달을 순교 성월로 지내고 9월 20일을 한국 순교자 대축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한국 천주교회는 3가지 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교사 없이 신앙이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지역과 문화에서는 선교사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는 실학을 연구하던 학자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하느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사상의 한계를 겪고 있던 조선은 많은 어려움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사상의 한계는 정치와 학문에만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백성의 삶 전반에 걸쳐서 문제를 야기하였고, 그 결과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실학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조선의 성리학사상을 극복하고 백성들 전체가 행복할 수 있는 사상을 연구하던 중에 천주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학문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신앙을 갖게 된 결과, 한국 천주교회는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서 시작되었다는, 두 번째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문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초대교회 신자들이, “성사”와 “사제”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중국 교회를 통해서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어 사제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특징은 박해 속에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1791년 조상 제사 문제로 발생한 신유박해로부터 시작된 박해는 1886년 한불조약으로 조정에 의한 공식적인 박해가 끝날 때까지 약 100여 년간 크고 작은 박해가 이어졌습니다. 그중에서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8-1841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1873년)는 규모와 의미면에서 큰 박해라고 해서, 4대 박해라고 부릅니다.

  조선에서 발생한 첫 번째 박해였던 신유박해는 조상제사와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이후에 있었던 박해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지배층에게 성리학이라는 지배체제를 극복하고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던 천주교인들은, 체제에 대한 반역자들이었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불어서 조선 후기 불안한 정치 상황은 세계의 중심이 중국에서 서양으로 변하고 있는 시대의 징표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서양의 종교인 천주교를 거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부에 의한 4번에 대대적인 박해와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면서도 신자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갔습니다. 저는 박해 속에서도 신자들이 늘어난 이유를 조선사회에서 가장 낮은 신분에 해당하는 백정이었던 “복자 황일광 시몬”이 재판장에서 했었던 말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자 황일광 시몬”의 말을 간단히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지금 백 번 죽는다 해도 후회가 없습니다. 백정으로 태어나 개, 돼지만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살던 내가 천주교 교우가 된 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 난 천주를 알기 전엔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나 자신이 백정으로 살아가던 때엔 세상 모든 것이 증오스럽고 나를 낳아 기르신 부모님은 물론 나 자신마저 미워하고 증오했습니다. …… 그러나 지금 사학죄인, 천주학쟁이로 죽어가는 이 순간, 나는 그 누구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습니다. …… 나는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백정으로 태어났다가 천자, 하느님의 아들로 죽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한국 천주교회의 특징을 3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학문연구의 과정에서 자발성과 역동성을 갖고 시작한 한국 천주교회는 박해를 거치면서 신앙적으로 성숙하여 지금 우리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신앙 선조들을 자랑스러워하고 그들의 모범을 본받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목숨을 걸고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에, 신앙 선조들의 모범을 본받는 것이 먼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복음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새로운 사상을 찾았던 지식인들의 모습교회의 재건을 위해서 알지 못하는 세상인 교황청에까지 서한을 보내면서 역동적으로 사제를 청하며 간절히 미사성제를 원했던 모습그리고 모든 인간이 똑같은 하느님의 아들딸이라는 생각으로이웃 사랑을 실천했던 신앙 선조들의 모습이 우리 안에 남아 있고, 잊지 말아야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전해 들었고이제 전해야 할 신앙 선조들의 모범이 무엇인지 기억하고이를 실천하게 해달라고한국 순교 성인들에게 전구를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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