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4년 1월 28일

오늘은 연중 제4주일로 어느덧 일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벌써 새해를 맞이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2024년도 익숙해졌습니다. 이렇게 새해가 익숙해짐에 따라 새로운 변화에도 익숙해집니다.

 

지난 15일 떠난 박효식 신부 후임으로 대전 교구의 곽연진 프란체스코 신부가 지난 25일 부임했습니다. 곽 신부님은 지난 2021년 12월 8일 대전 교구 사제품을 받았고, 첫 본당 사목을 잘 마치고, 두 번째 사목지로 우리 본당에 부임했습니다. 소위 “젊은 피”의 곽 신부님의 부임으로 우리 본당 사목에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습니다. 이에 여러분의 성원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1장의 내용으로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네 명의 제자를 부르신 후 본격적으로 구원 사업을 시작하시는 이야기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세 개의 공관복음 중 하나이지만 다른 두 복음과 같이 그 특징이 뚜렷합니다. 가장 먼저 편집된 복음으로 로마의 첫 번째 박해를 겪으며 초기 그리스도인을 위해 적힌 복음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간략하고, 박해에 대항하여 굳은 믿음을 독려하고 이에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능력을 강조합니다. 즉 말씀과 능력의 권위가 일치합니다. 이는 오늘 제자들과 안식일에 회당에 방문하여서 하신 일이 다른 복음과 달리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은 4명의 제자를 부르시고 갈릴래아 지방을 다니며 군중을 가르치고 갖가지 질병과 마귀에 들린 이들 등 병자를 고쳐주시며, 회당 방문 없이 바로 그들에게 ‘산상 설교’를 들려주십니다. 산상 설교는 5장에서 7장까지 길게 이어지며 복음의 기본적 가르침을 주십니다.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과 같이 광야에서 유혹을 이겨내시고 세상으로 나와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들른 회당은 다른 복음과 달리 예수님의 고향인 나자렛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희년을 선포한 예수님의 권위에 놀랐지만,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나 가족 친척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높은 귀족 가문이나 종교 가문 자제가 아니라 그저 동네 청년이었습니다.

 

이렇게 공관복음은 때로는 비슷하게 또 다르게 예수님의 삶을 전해줍니다. 각자 복음사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권능으로 드러내려 합니다. 그래서 가장 짧은 복음임에도 기적 이야기가 다른 복음에 비해 적지 않습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에게 말씀과 기적은 같은 권위를 갖습니다.

 

루카 복음은 마르코 복음과 같이 복음 선포 시작부터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 그리고 친척들에게까지 배척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기득권자들로부터 반대 받는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에서 회당을 찾아간 예수님은 회당 안에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더러운 영’은 예수님의 말씀에 쫓겨나며 외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1: 24)  더러운 영은 이미 예수님의 정체를 정확히 압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듣지 못합니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에 더러운 영이 쫓겨갔다는 사실에 놀라며 예수님 권위를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더러운 영도 이미 아는 데 신앙심이 깊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모릅니다. 예수님 말씀의 권위를 직접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너무나도 완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듣고자 하는 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으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신앙을 방해하는 더러운 영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삶의 희망과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다르게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상의 유혹입니다.

 

유혹은 가랑비처럼 내립니다. 가랑비를 우습게 보고 우산을 쓰지 않고 다 맞으면 그 비에 옷이 흠뻑 젖습니다. 유혹은 그렇게 옵니다. 빠지고 나서야 그것이 유혹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깨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더러운 영이 아니라 거룩한 영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거룩한 영은 유혹의 순간에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깨달음을 주고, 용기를 주고, 힘을 줍니다. 바로 성령의 힘입니다. 기도는 완고함이 아니라 겸손함을 줍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닫힌 마음을 열어줍니다. 그렇게 거룩한 영이 자신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권고가 아니라 꼭 이루어져야 하는 하느님의 명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 안에 계신 거룩한 영의 사명입니다. 거룩한 영은 이기심이나 욕망과 시기 질투 미움과 파괴의 더러운 영과 달리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의 바탕입니다.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세상이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가 굶지 않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양식과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이해해 주며 자기 잘못을 회개하는 사회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영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더러운 영은 우리를 이기심을 유혹합니다. 아집으로 유혹합니다. 시기와 질투, 욕망으로 유혹합니다. 그래서 남들과 비교하며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큰 권력을 행사하고 세도를 부리려 합니다.

 

나보다 강한 자에게 피해를 보았으면, 나보다 약한 사람을 위해줘야 하는데, 나보다 약한 이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한을 풀려고 합니다. 마치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더러운 영의 유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첫 번째로 하신 기적이 바로 더러운 영을 쫓아버리는 기적이었습니다. 어느덧 새해 한 달이 지나는 시점에서 서서 남은 한 해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지 열심히 고민하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유혹의 더러운 영을 떨치고 사랑의 거룩한 영으로 가득한 한 해를 살아가길 바랍니다.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