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3년 12월 24일

어느덧 대림 마지막 주일을 지냅니다. 올해는  대림절이 아주 짧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삼 주밖에 되지 않습니다. 내일이 바로 성탄축일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니 올 대림절은 좀 바쁜 시기였습니다.

  성탄을 하루 앞둔 주일을 지내며 크리스마스카드 그림처럼 흰 눈에 덮인 하얀 세상을 상상하는데 올해도 흰 눈 덮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변함없으니 그렇게 아쉬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다린 것은 흰 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니까요.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자렛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잉태되는 과정을 알려줍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은 나자렛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엄청난 소식을 전합니다. 성령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이에 두려움에 떨던 어린 처녀 마리아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설명에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 38) 이를 신학적으로 ‘피앗(Fiat)’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저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뜻의 라틴어’이루어지다’는 뜻의 ‘피앗(Fiat)’과 ‘저에게’라는 뜻의 ‘미히(Mihi)’에서 나온 말로, ‘피앗 미히’는 “저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성모님의 피앗 고백에서 또 중요한 부분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중의적 표현입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뜻이 제를 통해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의미는 바로 “말씀”은 바로 창조 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 성모님을 통하여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시게 되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 1: 1, 14)

‘말씀’ 즉 로고스(Logos)가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말 대로 그 아이기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성탄의 신비는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이 고백은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이 구원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고백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피앗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드러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fiat)……” 여기서 아버지의 뜻, 즉 말씀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땅에서 이루어질 때 가능합니다. 이의 시작은 바로 성모님의 피앗입니다. 성모님의 온전한 순종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모님의 순명은 예수님의 순명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죽음에 직면하였을 때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고 겟세마니 동산에 가시어 기도하실 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드립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루카 22: 42) 여기서 아버지의 뜻은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존재 목적은 바로 말씀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순명을 통해 완성됩니다.

  이렇게 성모님의 순명과 예수님의 순명은 성서학적 신학 관점으로 보면 구약의 아담과 이브와 대조가 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당신의 모습과 형상으로 창조하시어 당신의 입김을 불어 넣어 생명을 주시고 완벽한 세상인 에덴동산에서 살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굳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사탄의 유혹에 빠져 따 먹게 되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며 죽음의 벌을 받게 됩니다. 이로써 인류의 죽음은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이기에 이를 원죄라 합니다. 따라서 궁극적인 구원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즉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참조 요한 3: 16)

  이는 결국 구원 계획의 중심에는 아담과 이브가 거역한 하느님의 말씀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나자렛 마리아가 선택된 것입니다. 태생부터 원죄 없이 잉태되어 태어났고, 혼인할 때가 되었을 때, 가브리엘의 예고에 마리아는 이브와 달리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여 성령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되게 된 것입니다. 이브의 잘못을 성모 마리아의 순명을 통하여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을 통해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명으로 아담이 저지른 원죄를 예수님의 순명을 통하여 구원이 완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이 구원의 구체적으로 세상에서 시작되는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다리는 성탄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는 우리가 모두 말씀을 듣고 실천하여 그 말씀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피앗이 성탄의 시작이라면, 오늘 우리의 피앗이 성탄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구원 사업이 될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하느님께서 세상 구원을 위해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낸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희망의 이유인 예수님은 따라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기에 하느님의 말씀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성탄이 기쁜 이유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산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따라서 성탄은 하느님의 사랑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인 성모님의 온전한 순명으로 시작되었으니,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말처럼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하지 않은 이상향적인 말로 취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마음을 돌려 하느님께 온전히 귀의하게 한 가브리엘 대천사의 말을 반추하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루카 1: 37)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루카 1: 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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