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3년 11월 26일

지난 주일 본당 설립 50주년 갈무리하며 감사 미사를 드리고, 오늘은 올해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예수님께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냅니다. 이렇게 지난해 12월 대림 첫째 주일을 시작으로 전례력 ‘가’해를 시작하여 공관복음 중 마태오 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구원 역사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할 때가 되었습니다. 즉 지난 시간에 대한 감사와 다가올 시간에 대한 희망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끝을 준비하기보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잘 갈무리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즉 끝이 아니라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 2023년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한 해였습니다. 지난 50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얼마나 치열하게 세상 유혹과 싸우며 오늘을 이루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굳은 신앙심과 주님의 은총이 없었으면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50년의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은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작자 미상의 시의 한 대목처럼, 한 사내의 꿈에서 해변의 모래 위를 주님과 함께 걷다 뒤를 돌아보니 두 쌍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있음을 보았는데, 시간이 흘러 뒤를 돌아다보니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모래 위에 찍혀있었고, 그때는 그 사내의 삶이 가장 힘든 시기였음을 상기합니다.

  이에 사내는 주님께 따집니다. 언제나 주님을 믿고 따랐는데, 자신이 가장 슬프고 힘든 시간에 홀로 남겨두어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모래밭 위에 찍혀있노라고……

  주님은 슬퍼하는 사내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를 사랑하기에 너를 떠난 적이 없다. 네가 가장 슬프고 힘든 시기에 모래 위에 찍힌  한 쌍의 발자국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그때 내가 너를 안고 갔다.”

  지난 50년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행복과 기쁨이 세상을 덮은 적도 있지만, 세상이 끝나는 듯한 고통과 슬픔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분란과 분열, 비난과 미움이 난무하던 시기에도 잃지 않았던 것은 바로 우리의 신앙이었고, 그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안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공동체의 굳은 신앙심이 장하고 뿌듯하고, 은총 가득한 주님의 따듯한 사랑이 기쁨과 희망의 이유입니다.

  올 한해도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희년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여정은 언제나 쉽고 기쁨이 넘치는 길은 아닙니다. 다만 그 길의 끝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바로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언제가 아주 유명한 등반가에게 기자가 질문하길 힘든 산에 왜 올라가려 하냐고 물으니, 그의 답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였습니다. 산이 거기에 있기에 그는 올라갔고, 정복했고, 희열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계속해서 더 힘든 산을 찾아 정복하려 노력하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좁은 문을 통하고 좁고 힘든 길을 가는 이유는 그 길의 끝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은 고난 중에도 기쁨을 경험할 수 있고, 슬픔 중에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이 예수님을 따라 힘든 여정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여정이 마침내 끝났을 때, 우리는 바오로 성인의 고백을 온전히 이해하고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훌륭한 싸움을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I have fi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and I have kept the faith.)“ (2 티모테오 4:7)

  마태오 복음 25장의 오늘의 복음은 바로 “끝맺음‘ 관한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모든 것에는 그 끝이 있고,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에 따라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최후의 심판 때가 오면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심판하실 것이라 예언하십니다.

  오늘 복음 바로전의 이야기는 지난 복음에 들은 바대로 ‘탈렌트의 비유’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상기하자면,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따라 탈렌트를 맡기고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을 때, 그는 종들과 셈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맡긴 자금으로 더 많이 번 종에게 상을 주고, 그 돈을 잃을까 봐 가만히 보관만 한 이에게는 벌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상을 준 이유는 이러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주인이 종에게 맡긴 돈은 엄청난 돈으로 당시 탈렌트의 가치를 현재의 돈으로 환산하면 약 $680,000 이니 다섯 탈랜트는 삼백사십만 불입니다. 그런데도 작은 일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 주인의 능력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이 큰 분임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온 주인이 종들과 셈을 하는 비유는 오늘 최후의 심판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그 주인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아들’이고 그분이 다시 돌아올 때, 셈을 하게 될 종은 “모든 민족‘입니다. (참조 25:31) 사람의 아들의 능력과 권한이 실로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오늘 전례의 제목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온 누리의 임금이 되시어 돌아올 때, 백성들을 둘로 가르는데, 그 기준을 들으면 지난 주일 탈렌트의 비유에서 탈렌트가 갖는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심판하는 기준은 다름이 아닌 하느님의 자비 실천입니다. “굶주린 이들, 목마른 이들, 그리고 나그네를 돌아주는 자비가 심판의 기준이며, 나아가 헐벗은 이, 병든 이, 그리고 감옥에 갇힌 이를 보살피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이를 저버리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로 그들을 따듯하게 보살핀 이들은 바로 예수님을 그렇게 보살핀 것과 같아 구원받게 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저주를 받아 불 속에 빠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참조 25:34-46)

  그들의 상은 다름 아닌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하신 나라를 차지 하는 것입니다.(25:34) 이는 탈렡트 비유의 보상에 비해 실로 엄청난 보상입니다.

  나아가 심판을 받는 이들은 자비를 베풀지 않은 이기적이거나 완고하여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보살피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오히려 그들에게 부를 안겨준 것 같습니다. 그런 이들이 더욱더 잘 살아가는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자선을 베풀고 사랑을 베푸는 이들은 손해를 보는 듯이 보입니다.

  이러한 괴리가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현상에 이렇게 답하십니다. 그들은 이미 받을 것을 다 받았거나, 그들의 불의는 심판 때에 엄중히 처벌받게 될 것이라 말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25:41)

  그리하여 악인들은 영원히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라 복음사가는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지만, 심판 때에는 심판관으로 오십입니다. 그때는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 자기 삶의 책임을 지는 때입니다. 그러니 지금 아직 용서와 화해의 기회가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이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25:40)

  한 해를 갈무리하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때입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나 자신을 솔직히 심판하면 나는 어느 편인가? 양인가 염소인가? 의인인가 악인인가?” 아무래도 대부분이 그 중간 어디에 어정쩡한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그리 내 세울 수도 그렇다고 딱히……그저 그런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그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따르려는 노력을 시작할 때입니다.

  과거에 그렇게 하지 못해 후회하는 지금이 그때입니다. 그러면 내일은 희망입니다. 후회는 자괴감이 아니라 반성의 시작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나의 삶이 변하고, 희망찬 내일을 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것이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마태오 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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