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3년 10월 22일

늘은 연중 제29주일로 시월 하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직 뉴욕의 단풍은 요원한데, 날씨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단풍이 그리 예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지난 화요일 우리 교구의 본당신부 회의가 있었는데, 로버트 브래넌 주교님이 지난 8주 연속으로 토요일에 비가 오고 있다고 한탄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교구 성체대회가 토요일 비가 와서 취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희 본당은 주님의 은총으로 지난 주일에 비가 오지 않았고, 나아가 아침에는 바람이 심했지만 곧 구름을 뚫고 해가 나서 나름 포근한 날씨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흥겹고 즐거운 바자회 잔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의 장기 자랑은 바자회의 백미였습니다. 아이들의 재롱처럼 흥겹고 기쁜 일이 없습니다. 성당 뒷마당을 가득 채운 아이들을 노랫소리, 응원 소리가 우리 본당 미래를 위한 함성 같아서 흐뭇했습니다.

  지난 주일 바자회를 위해서 모든 단체가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올해는 음식이 모자라지 않게 해달라는 저의 부탁에 대부분의 단체가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애썼습니다. 이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우리 본당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가 바자회가 안전하게 기쁘고 알차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해서 모은 모금액은 우리 본당 청소년 프로그램을 위해 쓰일 예정입니다. 이는 다음 50년을 준비하는 사업이 될 것입니다.

  즐거움은 힘이 되고 희망이 되고 미래가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십니다.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발판이 되길 바라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언제나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복음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온전히 받아 내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후 사흗날에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오시어 부활의 영광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시어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성령과 함께 성령 안에서 제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세상에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 19-2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 선포의 대상은 “모든 민족”입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의 중대한 변화를 말합니다. 알다시피 마태오 복음의 주요 독자는 유다인들입니다. 이들은 모세 오경을 비롯한 성경과 율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며,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각별합니다. 다만 그들의 믿음의 중심에 조상 전통인 율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은 원래 모세가 하느님께 직접 받아온 십계명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느님의 법뿐만이 아니라 전통 관습법까지 포함되어 율법의 수가 점점 늘어나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범위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일반 사람들의 일상에 불편을 초래하는 짐이 되고 힘든 멍에가 되었습니다. 또한 율법은 하느님을 사랑이 아니라 용서가 없는 심판과 처벌의 하느님처럼 만들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위선을 편견을 분연히 깨버리시어 군중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신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하느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즉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새 해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증언처럼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다인들의 율법에 대한 완고한 해석은 조상 전통의 율법이라는 명분으로 회개할 줄 모르고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하고 수석 사제들과 사두가와 모의하여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에 구원의 대상은 유다인에 국한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말씀이 바로 이 보편적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복음화의 여정에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과 구세주이신 성자 예수님, 그리고 우리를 성화시켜 주시는 성령을 통해 우리와 언제나 함께 세계 복음화에 함께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이는 우리가 삼위일체의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또한 우리의 삶에 삼위일체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하느님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는 일치의 삶을 말합니다.

  이는 제자들의 복음 선포 여정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세상 끝날 날까지 언제나 함께 있겠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그렇습니다. 복음을 들었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그 복음을 실천하며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복음을 살아가고 이웃에게 전하는 삶이 바로 구원의 삶입니다. 이는 회개의 삶이며 용서의 삶이고 화해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삶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전도하는 삶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전도하는 삶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 13-15)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세례를 받아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복음을 전파는 사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 구원해야 하는 사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오로 사도의 설명입니다.

  가톨릭교회는 공동체 구원입니다. 나 혼자만의 구원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사랑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배타적이지 않고 폐쇄적이지 않고 오히려 이타적이며 개방적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이들은 모두 우리 교회의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편적 구원의 가톨릭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각자의 전교 활동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교회 전교의 대상은 온 세상 모든 민족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경을 인용하여 전교의 기쁨과 은총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서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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