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3년 10월 1일

오늘은 연중 제26주일로 아름다운 시월을 시작합니다. 다행히 시월의 첫날을 비가 아니라 햇살로 시작합니다. 지난 주말 폭우로 홍수 주의보가 계속해서 발령되었는데, 비 피해를 보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아무 피해 없기를 바랍니다.

  본격적인 가을 시월이면 듣는 노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저 하늘이 기분 좋아/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오랜만에 화창한 시월 첫 주일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온 가족이 기분 좋게 가을을 시작합니다. (사실 이글을 폭우가 쏟아지는 금요일에 쓰는데, 오로지 일기 예보 내용만 믿고 씁니다. 주일 아침에 비가 오면 또 양치기 소년이 되는 건가요?)

  오늘 주일 복음은 마태오 복음 21장의 말씀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회개의 중요성에 대해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로 설명합니다.

  마태오 복음 21장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갈릴레아 전교를 마치고 예루살렘을 향해 사마리아 지역과 여러 유다 지역을 지나시며 마지막 전교 순례를 하십니다. 그리고 드디어 많은 군중의 열열한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들과 조우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에만 있기에 갈릴래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교를 한 예수님을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예수님의 말씀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전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율법 중심의 신앙생활을 강조하기에 성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순례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자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장사꾼들을 모두 내쫓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그들은 수석 사제들의 묵인하에 그런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진짜 이유는 장사가 아닙니다. 세계 각국에서 유다인들이 순례를 오기에 환전상이 필요하고, 성전에 제물을 받쳐야 하기에 비둘기 장수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신 것처럼 그들이 너무 지나친 폭리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멀리서 갖은 고생을 하며 하느님의 집을 찾아왔는데, 그들을 폭리로 착취하는 것이 옳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 그토록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선포와 같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오 3: 2)

  이를 본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무슨 권한으로 성전에서 가르치냐고 따집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 세례를 들어서 그들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21: 25)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세례는 기득권자들과 달리 이미 수많은 군중의 호응을 얻었기에,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이 반대할 수도 없고, 긍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 봉착하여 대답 못 합니다. 이에 예수님도 이렇게 답하십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21: 27)

  그리고 오늘의 포도밭 주인의 두 아들에 관한 비유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을 하라 하니 싫다고 답하였지만. 곧 후회하여 일하러 갔습니다. 또  둘째에게 시키니, 그는 “가겠습니다.” 하고 답하고는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던집니다. 당연히 그들의 답은 맏아들입니다. 이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오 21: 32)

  오늘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권한을 들며 당신의 가르침의 정당성을 강조하십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입니다. 모든 죄인은 회개하여 구원을 준비하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맞이할 준비를 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로 세례자 요한이 준비한 바로 그 권한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오늘 회개의 예로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를 들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당시 가장 큰 죄를 지은 죄인들로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예를 들어, 큰 죄인들도 회개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로 회개의 힘과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회개는 어떠한 중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게 합니다.

  회개는 그리스어로는 ‘생각을 바꾼다.’라는 의미를 갖지만, 구약 성경의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바른 방향이 바로 하느님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바로 성전에서 환전상과 비둘기 장수들에게 하느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고 화를 내신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실 그들이 그렇게 폭리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이기고, 그들이 그 이익을 나누어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도 공모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행동에 불만을 품고 따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회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완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 그리고 사두가이에 이어 수석 사제들과 백성들의 원로도 예수님의 적이 되어버립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받는 것이 제일 두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기득권을 흔들고 계십니다. 그들의 기득권이 군중을 더욱 힘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이 잘못은 아닙니다. 능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능력 차이가 인권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기득권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약자를 무시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누군가는 기득권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득권자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이는 기회가 그렇게 돼서 기득권자가 되고, 어떤 이는 고군분투 노력을 통해 기득권자가 됩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권리나 재물이 아니라 자비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덜 가진 이들에게 또 약한 이들에게 소외된 이들에게 베풀 수 있는 아량과 포용 그리고 자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회개는 바로 그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살기보다 자비를 베풀며 사는 삶의 전환을 바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면 부자인 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무시하지 않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바로 자비입니다. 그를 위해 우리가 모두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으로……해바라기가 해를 따라가듯.

  눈이 부시게 푸르른 시월의 하늘을 기대해 봅니다. 그 하늘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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