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3년 9월 24일

오늘은 9월의 마지막 일요일로 연중 제25주일을 맞이합니다. 이제는 완연한 가을의 쌀쌀한 날씨에 성급한 나무들은 어느새 마른 잎을 떨어트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원의 단풍이 시작될 것입니다.

  계절이 변하면서 우리의 삶도 변합니다. 옷가지도 변하고 마음도 변합니다. 따듯한 옷으로 쌀쌀한 날씨에 대비하고, 슈퍼마켓에 햇과일이 풍성해지고,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누군가는 차분해지는 가을이 설렌다고 하고, 또 누구는 떨어지는 낙엽에 서글퍼진다고 합니다. 각자의 다른 성향들이 느끼는 다른 생각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획일화되지 않은 생각은 복잡한 듯하지만, 삶은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을에는 많은 행사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사들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역시 풍요로운 가을의 백미는 ‘한가위’입니다. 우리 삶이 한가위처럼 넉넉하길 바랍니다.

  이번 주일은 본당 족구와 콩주머니 넣기가 있습니다. 남자들은 족구를, 여자들은 널빤지 위에 뚫린 구멍에 콩주머니를 던져서 넣는 게임입니다. 이는 미국 시골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게임입니다. 게임을 함께 하다 보면 공동체 의식도 강화되고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적당한 경쟁은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경쟁은 서로의 실력을 향상 시켜줍니다. 경쟁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의지를 불어넣어 주기도 합니다. 경쟁의 장점은 많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과유불급입니다. 과하면 아니함만 못합니다. 지나친 경쟁은 서로 적이 되어 미워하고 폭력적으로 되어서 발전이 아니라 파괴와 파멸의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경쟁에도 배려가 필요합니다. 경쟁은 상대방보다 더 잘하려는 노력이지 상대방을 쓰러트려 이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경쟁은 나의 노력을 배가시키려는 것이지 남을 약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질투가 경쟁의 원인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경쟁은 자기 계발입니다. 경쟁이 질투와 미움과 분노의 이유가 되어서도 안 되고, 반칙으로 이겨서는 더욱 안 됩니다.

  우리 삶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할 때가 있고, 협력할 때가 있습니다. 협력과 경쟁은 반대가 아니라 함께 공존해야 세상이 건강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오 20: 1-16)를 들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가르쳐주십니다.

  포도밭 주인이 이른 아침 시장에 나가 일거리를 찾는 일꾼들을 고용하여 포도밭 일을 시킵니다. 늦은 오전에 나갔을 때 아직 일거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있어 그들도 고용합니다. 그렇게 정오, 3시, 5시에도 포도밭 주인이 시장에 나갔을 때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이 서 있어서 물어봅니다.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6-7)

그래서 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포도밭으로 보냅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일과를 마쳤을 때, 주인은 일꾼들을 모아 품삯을 나누어 줍니다. 여기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포도밭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로부터 다 저녁에 온 사람들에까지 똑같은 하루 품삯을 나눠줍니다.

  주인이 다 늦게 일꾼들을 데려온 것은 딱히 그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하루 종일 일거리를 찾지 못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집에 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서성이는 이들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자비심이 가득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 일꾼들도 다 저녁이 되었는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빈손으로 가족들에게 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최후의 순간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은 이들에게 포도밭 주인은 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하루 품삯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는 길을 상상해 봅니다. 정말로 운수 좋은 날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일꾼들이 바라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루 일을 해서 가족들을 배고프지 않게 먹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일거리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포도밭 주인은 그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고, 그들의 염원에 자비롭게 하루 품삯을 모두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온 이들은 그 사실이 못마땅합니다. 다 늦은 시간에 온 이들은 일도 거의 하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일한 그들과 품삯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그들의 말이 맞습니다. 포도밭 주인이 불공평한 것 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들의 불만에 이렇게 답을 합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20: 13-15)

  사실 주인은 처음 온 이들에게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온 이들에게 후한 것이라 설명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들은 원래 받기로 한 품삯을 받았기에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보다 적게 일한 이들이 똑같이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생겼을 뿐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언제나 이렇습니다. 자신을 보지 않고 남을 보며 자신을 평가하며, 울고 웃고 합니다.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해 배 아파하고, 남이 안 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스스로 안심을 합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며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려 합니다.

  오늘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온종일 일을 하며 힘들었지만, 식구들 굶길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편했습니다. 반대로 다 늦게 온 일꾼은 온종일 걱정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내일 하루 종일 일을 못 찾고 걱정하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때 오늘 포도밭 주인같이 자비로운 이가 다 늦은 오후에 그를 고용해 줄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20: 16) 그러니 언제나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보다 못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우리의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일 슬픈 일이 있어도,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일 굶주려도 하느님께서 배불리 먹을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오늘을 감사하고, 이웃에 자비로워야 합니다. 그러면 꼴찌가 첫째 될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과 함께라면 모두가 첫째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가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첫째와 꼴찌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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