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3년 8월 6일

오늘은 연중 제18주일이면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지난 주일부터 바뀐 날씨가 마치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 선선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습도가 있으니, 저녁에는 더운 느낌입니다. 여름은 여름입니다.

  지난 주일 주보에 올린 저의 글 시작에 “뉴멕시코의 나바호 선교를 떠난 우리 청년들이 주일 새벽에 도착했다고 전했는데, 사실은 수요일 아침에나 도착했습니다. 주보 글을 쓸 때가 금요일이었기에 미리 예상한 소식이었는데, 비행기가 마지막에 취소가 되어  화요일 비행기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미 주보는 프린트됐고 배부가 된 다음에 변경 스케줄을 연락받아서 부득이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문자가 말보다 어려운 것이 이 부분 같습니다. 문자는 한 번 적혀서 배포되면, 그대로 기록이 됩니다.

  갑작스러운 항공사의 사정으로 뉴욕발 항공편이 취소되어 결국 화요일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였습니다. 월요일부터 출근해야 하는 친구들은 회사에 연락해서 사정을 알리고, 우드사이드 성당의 김 바로오 신부님도 함께 갔는데, 주일미사 문제가 생겨서 로마에서 온 임 신부님이 급히 가서 미사를 드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화요일 밤, 다시 공항에 가는 길에 연착연락이  와서 더욱 불안한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하여 긴 기다림 속의 새벽에 드디어 연착한 비행기를 타고 수요일 아침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밤새 잠도 잘 못 잔 청년들의 모습이 초췌한 모습이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초췌한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것은 일주일간의 보람찬 선교로 인한 뿌듯함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기쁨입니다.

  일주일간의 선교 활동보다 미국 내 선교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도 험난(?)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선교는 어디를 가도 쉽지 않습니다. 선교지는 기본적으로 오지이기 때문입니다. 남미의 오지나 미국 내의 오지나 다른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지를 향한 선교는 언제나 쉽지 않은 일임에 꼭 해야 하는 그리스인의 사명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랑이 구원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지면 생기는 동심원 물결 같습니다. 물결은 돌이 빠진 곳에서부터 멀리 퍼져나갑니다. 물결이 물가에 도착할 때까지……사랑도 그렇게 주님이 사랑이 물결처럼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야 합니다.

  오늘 주일 주님께서 보여주신 ‘거룩한 변모’는 그 사랑의 시작과 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이고, 예수님은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외아들로 그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음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사실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내는 배경은 바로 9월  14일 ‘십자가 현양 축일’ 40일 전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변모로 주님의 십자가 현양 축일을 열성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즉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의 실패가 아니라 하느님의 승리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9월 14일이 ‘십자가 현양 축일’이 된 이유는 4세기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인은 일찍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여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에 영향을 받은 황제는 중요한 통일전쟁에 앞서 계시받았는데, 이는 모든 병사에게   표시를 붙이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시였습니다. 황제는 이 계시에 따랐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톨릭교회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후에 그 표시의 의미를 알아보니, 바로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철자, XPIΣΤΟΣ의 첫 두 자였습니다.  는 그리스어 알파벳 이름인 키로(XP)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어에서 X는 “키”라 부르고,  “크” 소리를 내고, P는 “로”라 부르고 ‘르’ 소리를 냅니다. 즉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황제에게 들려온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호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로마의 국교가 된 천주교 교세는 박해 없이 확대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헬레나 성인은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찾기 위해 예루살렘 순례를 감행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그 십자가를 발견합니다. 그날이 9월 13일이었다고 합니다.  훗 날 로마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그 십자가를 전시해서 신자들이 경배할 수 있게 했는데, 그날이 9월 14일이었고, 그 후 그날을 십자가 현양 축일로 정해졌습니다.

  최고의 형벌인 십자가가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 승리하신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 1 고린 토 1 : 22-23)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님은 사흩날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당신의 사명을 완성하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어 교회를 맡기시고 하늘로 승천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당신 사명의 완성이고, 이는 우리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였습니다.

  이러한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을 ‘거룩한 변모’를 통하여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룩한 변모 후 제자들과 산에서 내려오는 중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마태오 17 : 9) 그렇게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죽음을 통해 부활할 것을 믿는 하느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용기를 내어라.” 는 헛말이 아니라 구원의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스러운 일상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기보다는 굳은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극복할 일은 극복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는 혼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할 때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각자의 믿음이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함께 더불어 믿고 실천하는 공동체의 힘입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씨앗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과 같이 많은 열매를 맺는 밀밭과 같은 하늘나라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아주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커다란 숲을 이루는 것과 같이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한 하늘나라처럼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본당이 어느새 설립 50주년을 맞아 여러 행사를 하며 그 기쁨을 만끽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세운 세대들이 꾸었던 꿈을 이루어 가며, 오늘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 꿈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그 꿈을 꾸며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 가는 우리 본당의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공동체를 그려봅니다.

  오늘 보여주신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우리 본당 공동체의 미래이길 꿈꿉니다. 그렇기 위해 오늘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나눕니다. 우리끼리만 아니라 멀리 오지에도 그 사랑을 나누고 세상 끝까지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거룩한 변모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표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으며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며 하늘나라를 증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 (베드로 2서 1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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