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3년 4월 23일

어느새 부활 제3주일을 맞이합니다. 지난 주일 ‘하느님의 자비’를 기념하며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봄이 무르익어 감에 따라 우리의 일상에서 부활의 의미를 녹여내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봄의 모습은 겨울의 차가움을 녹여내고, 언 땅을 뚫고 나온 새싹이 생명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신비입니다. 그렇게 드러난 생명은 죽음을 이겨내고 되살아났다는 부활의 신비를 드러냅니다. 이 신비가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보여주신 부활의 신비입니다.

  금요일 저녁 해가 뉘엿뉘엿 서쪽 하늘로 지고 있을 즈음, 우리 아이들이 코치 버스를 타고 2박 3일간 부활 피정을 떠날 준비를 하고 본당신분의 강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긴 그림자를 뒤로하며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참 뿌듯했습니다. 버스 안의 40명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미소 띤 얼굴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참 아름다웠습니다.

  차 밖에서 떠나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떠난 아이들이 오늘 오후에 돌아옵니다. 무사히 주님 부활의 은총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부활은 죽은 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로운 삶으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즉 부활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로의 변화입니다. 세상적 가치관에서 하느님의 가치관으로 변화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미국 작가 트리나 파울러스(Trina Paulus)의 작품,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의 애벌레가 생각이 납니다. 애벌레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세상의 여러 애벌레들을 만나며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픈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애벌레는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다른 애벌레를 밟고 오르는 애벌레 산을 발견하고 사력을 다해 다른 애벌레들을 밟고 끝까지 오릅니다. 그 정상에서 발견한 세상은 끝없는 욕망의 산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쯤, 그의 동료이며 사랑이었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며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 합니다.

  결국 그 애벌레 산에서 내려온 애벌레는 나비를 따라가 나무에 매달린 텅 빈 누에고치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알아챕니다. 그렇게 스스로 누에고치의 암흑 속으로 들어가고, 시간이 흘러 고치를 깨고 나비가 되어 세상을 자유롭게 날며 하늘 높이 날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가 희망이 있습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 내일은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내일은 더 높이 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그러나 그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언제나 좌절이 희망보다 먼저 우리를 덮치는 현실을 경험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절망의 벽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 자신을 쉽게 발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가족을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또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헤맵니다. 마치 무지개를 잡으러 떠나는 소년처럼……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가치관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합니다.

  다른 애벌레들 밟고 올라간 정상에 아무것도 없듯이, 우리의 무한 경쟁은 의미 없는 희망 고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나는 노력 끝에 허망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오만과 아집은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죄 없는 사람들도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결국 애벌레 산을 내려온 애벌레가 스스로 암흑의 누에고치 속으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자신의 온전한 정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날개를 단 나비입니다.

  아무도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의 전신이라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믿지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체가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무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지 못합니다.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상상하지 못하면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남을 짓밟고 오르려는 무한 경쟁의 쳇바퀴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남을 짓밟지 않고 높이 자유롭게 오를 수 있다는 현실을 증명해 보이신 가장 강력한 표징입니다. 자신을 부족함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믿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채워 주시는 자비의 표징입니다. 남들보다 더 높이,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누구나 다 함께 더불어 가는 여정의 동반자임을 알려주는 표징입니다.

  그를 위해 애벌레가 잠시 누에고치의 암흑 속으로 들어가듯,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감수하시듯, 우리도 우리의 고통과 고난이 저주나 천벌이 아니고 부활을 위한 과정임을 깨닫고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암흑의 시간 속에서 날개가 돋아나고 생명이 가득해져서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저 높은 곳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 부활 이야기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잠시 언급된 이야기로  루카 복음은 자세히 그 이야기의 감동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지 사흘이 된 안식일 다음 날에 낙담한 두 제자가 자기 고장인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무덤이 텅 비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가던 도중에 한 나그네를 만나 함께 길동무를 하게 됩니다. 그 나그네는 성경의 예언자들의 말을 풀이해 주는 데, 저녁이 되어 저녁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았을 때, 빵을 들고 기도를 한 뒤, 떼어서 그들에게 나누어 줄 때서야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빵을 들고 기도하신 뒤에 떼어서 나누어 주신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성체 성사는 우리의 세상적 욕망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하는 부활의 표징임을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세상에 패배가 아니고, 실패가 아니고, 절망이 아니고, 좌절도 아니며,  오히려 성공이고, 승리이며, 희망이라는 사실을 부활로 증명해 보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주님과 함께라면 실패와 패배와 좌절의 증거가 아니라 성공과 승리와 희망의 발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부활 시기 동안에 우리는 애벌레가 누에고치에서 나비가 되듯이……그렇게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듯이……예수님의 말씀이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듯이……빵을 떼실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와 언제나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이것이 부활의 신비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다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엠마오로 떠나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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