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3년 4월 2일

오늘은 완전한 봄의 시작인 4월의 첫 주일로, 사순 시기의 정점이 성주간에 들어가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파스카, 즉 과월절 축일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일어난 파스카 신비의 시작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에 오신 것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예루살렘 입성은 예수님의 마지막 입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제 때가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때가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당신의 때가 올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의 첫 번째 기적인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 포두주가 떨어진 것을 아신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께 도와주라고 말씀하시자 아직 당신의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후에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할 때 이를 피합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유다인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미워하며 해하려 하였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당신의 때를 향해 당당하게 가십니다. 세상 사람 소리에 부화뇌동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때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그때가 바로 오늘 주님 수난 주일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합니다. 성으로 들어가시는 것은 세상적으로 영화롭게 보이고 왕의 귀환 같으나 사실 아버지의 뜻은 수난과 치욕과 죽음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쉬웠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 밤길을 따라 겟세마니 동산으로 가십니다. 겟세마니 동산은 예루살렘 성 동쪽 밖, 키드론 계곡으로 예로부터 최후의 심판이 올 때 그곳에서 가장 먼저 구원이 일어난다고 믿었기에 공동묘지가 있는 곳입니다. (지금도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유명한 공동묘지입니다.)

  무덤들을 지나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를 드리시며 때를 기다립니다. 이때는 바로 붙잡히실 때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근심과 번민에 휩싸입니다. 그렇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갈등이 고조되어 당신의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말씀하시며, 곁에서 자고 있는 베드로와 제베데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함께 깨어 있으라고 채근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기도드립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마태오 26: 42) 이 기도를 두 번이나 하십니다. 그만큼 당신의 죽음에 직면하여 인간적인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번민을 뒤로 하고 마지막 결심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때를 위해서 오신 것임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때가 인간적으로는 수난과 죽음의 때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 그리고 대사제들이 인간적인 승리를 거두는 때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아버지의 때는 사실 죽음의 때가 아니라 부활의 때입니다.

  괴로워 죽을 지경에 처해서도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순명한 예수님의 믿음이 가장 돋보이는 순간입니다.

  우리도 믿음을 말하면서 가장 인간적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적 결정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이기적인 욕망과 완고한 아집과 편견의 결정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유다인들처럼 자신이 옳다고 착각합니다. 자신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인간적인 유혹에 빠져 고난을 피하고 세상적 편안함과 안전을 추구하고 싶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태오26: 41)

  예수님의 고통과 번민을 보면서도 잠에 빠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처럼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려 할 때, 문득 깨어있으라는 예수님의 질타를 기억합니다.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26; 40)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 혼자 살기 위해 먼저 뛰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좀 늦더라도 함께 더불어 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보는 것만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고,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는 평범하지만 보편적 진리를 믿는 배려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고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모여 함께 기도하는 교회는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넘어진 이의 손을 잡을 줄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때가 가까웠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 가자.” (마태 26: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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