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2년 7월 24일

오늘 연중 제17주일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어느덧 7월의 네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폭염이 지속되는 한여름을 버티기 버거워지니 자연히 가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한여름의 열기에 뜨거워진 세상을 식혀줄 소나기를 그려봅니다. 44

  그래도 한가지 위로가 되는 사실은 여름은 여름다워야 건강하다는 격언입니다. 각 계절이 그 계절에 맞는 날씨를 보여줄 때 불편함도 있지만 우리 삶이 건강해지듯이 사람들도 각자도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다운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과 형상으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말씀에서 출발하면,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사람다운 삶의 모습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 복음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 1-3)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 14)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길입니다. 그 말씀은 간단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더욱 행복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아담과 이브의 첫 공동체를 시작으로 한 공동체 삶의 방식입니다.

  물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려운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이해와 협조를 필요로 하고, 용서와 화해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나가시어 첫 말씀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잘못된 것을 바꾸려는 회개가 절대적이고,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용서를 부르고 믿음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를 새로운 기도문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기도문인 ‘주님의 기도’의 루카 복음의 내용입니다. (루카 11: 2-4) 루카 복음의 기도문은 마태오 복음의 그것보다 간략한 기도문입니다.

  루카 복음의 기도문은 아버지께 네 가지를 청원합니다. 하나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생존의 가장 기초가 되는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주시어 끼니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세상적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청원합니다.

  주님의 기도가 청원 기도의 가장 기초가 됩니다. 청원을 하되 가장 필요한 것을 청원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청원한다고 다 들어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을 청원하면 들어주십니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슈퍼마켓에서 실랑이를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과자들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나갈 때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들고 옵니다. 이에 어머니가 흔쾌히 사줄 때도 있지만 대게는 건강에 안 좋다는 이유로 사주지 않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건강이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과자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맛보다는 건강한 음식인지를 먼저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청원 기도를 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꼭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꼭 원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기도가 내 욕망을 충족시키는가 아니면 내 삶을 충족시키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욕망의 충족은 잠시 순간의 행복이고 자신만의 행복이지만, 삶의 충족은 보다 근본적인 행복을 주고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예수님의 기도문은 이를 가장 잘 반영한 기도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권력자의 욕망에 따라 국민이 따라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권력자인 하느님께서 백성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실제로 당신의 외 아드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희생되셨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단순히 꿈의 이상향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통해 실현가능한 나라입니다.

  또한 우리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필요로 합니다.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 생존의 가장 기본입니다. 이를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배고픈 갓난아이가 우는 것과 같습니다. 말 못하는 아이가 울면 엄마는 아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합니다. 기저귀를 보고 어디 불편한 데가 없는지 아이를 안아 살핀 후 젖을 물립니다. 아이의 엄마는 열심히 젖을 빠는 아이를 보며 흐뭇해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이러합니다.

  부모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이 함께 더불어 재미있게 놀 때일 것입니다. 이때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면 금상첨화입니다. 가장 행복한 가정의 모습의 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과 함께 화목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삶을 영위할 때 우리도 행복하고 하느님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형제가 서로 싸우고 반목하고 미워한다면 이처럼 안타깝고 암담할 때가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님이 관심이 부족했던지 아이들 사이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던지, 아니면 아이들 각자 자신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덜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외 아드님을 보내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되는 것을 감수하셨습니다. 보편적 사랑을 드러내 보이시며 새롭게 출발할 부활의 신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어릴 적에 형과 싸우고 나면 뜬금없이 어머니께 묻고 했습니다. “엄마. 형이 더 좋지! 말도 잘 듣고……” “그런 소리가 어디 있어? 열 손가락 깨물어봐라. 안 아픈 손가락이 있나. 내겐 다 소중해.”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이 답을 알면서도 괜히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아마도 “다 소중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어린 마음에서일 것입니다. 그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여 화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꿈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라서 서로 미워하지 않고 화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이렇게 행복한데, 이를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의심하려는 유혹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더 옳다고 착각하는 유혹입니다. 자신이 더 아프다고 믿는 착각입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덜 사랑받는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착각입니다.

  하느님께는 우리가 서로 다를 뿐 모두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혹에 빠집니다. 하느님을 의심하는 유혹,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믿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하는 유혹, 남을 무시하고 미워하려는 유혹, 등등 일상에서 수많은 유혹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살아갑니다.

  유혹에 빠질 때는 두려움이 문제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의심에서 오는 두려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남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 등등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언제나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움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면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쉬워질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당신의 멍에는 쉽고 짐을 가볍다는 역설적 가르침이 사실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완벽한 존재이지만 우리가 그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이는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사랑하며 살아갈 때 그 완벽한 힘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각 개인은 미미하나 함께라면 더 강해집니다. 그래서 비난이나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의 완벽함을 드러낼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힘들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여름답기 때문입니다. 무더위를 받아들이고 그늘에서 쉬면서 천천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늘에 쉬면서 가족끼리 이야기꽃을 피워도 좋겠습니다.

  이 더위에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더위를 즐겨도 좋고, 아이스 커피로 더위를 피해도 좋습니다. 무엇이 더 좋다는 것은 개인의 기호일 뿐입니다. 탁자에 둘러앉아 서로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함께 삶을 나누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또한 오늘 무더운 여름을 즐기기 위해 베이사이드의 앨리 판드 파크(Alley Pond Park)에서 족구 대회와 피구 대회를 개최합니다. 함께 더불어 즐기는 놀이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더위를 이기고 삶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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