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2년 6월 5일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로 지난 50일간의 부활 시기를 갈무리하며 교회의 시작을 알립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은 교회의 설립을 알립니다. 성부와 성령으로부터 오신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바로 교회의 시작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요한 20: 21) 이렇게 뜻깊은 오늘 성인 견진 성사가 있습니다. 참 기쁜 날입니다. 견진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도 세상에 보내십니다. 당신 말씀을 전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라 명하시며 보내주신 성령은 제자들이 주님과 언제나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 아니라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십니다. 지난 이천 년간 예수님의 말씀은 연연히 전해지고 세상 끝까지 전해졌고, 그 말씀은 200여 년 전에 우리 조상들에게도 전해져 그 은총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지난 9일간의 의료미션 여행 동안 주님의 은총이 세상 끝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은총은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풍성해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깨닫는 여정이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의 모습에서 옛 한국전쟁 후 사진에서 본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우리 부모님들의 사랑을 다시 느낍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이들도 우리나라처럼 언젠가 물질적으로 좀 더 풍요로워지길 바라며 신앙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볼리비아는 지금 겨울에 접어들어서 습하고 차가운 바람이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지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에서 온기를 느끼며 미소짓는 이유를 찾습니다. 우리 일상의 성령이 따스한 온기로 우리의 마음을 녹여줍니다.

  커다란 병원도 아니고 대단한 의료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동네에 찾아온 의사의 진료에 모든 동네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들이 아픔을 토로하고 먼 나라에 찾아온 이방인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그들은 위로를 받습니다. 치유를 받습니다. 그들이 받아 가는 약은 덤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레아 여러지방 곳곳을 찾아다니시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때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주변에 모여들어 말씀을 듣고 감동하며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억울함을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임마뉴엘: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버지 곁으로 승천하시고, 우리에게는 보호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길 잃은 양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었습니다. 성령은 주님의 치유의 권능을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권능은 용서의 권한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용서로 표현됩니다.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하면서 우리 안에 성령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치를 합니다. 교회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성경에만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제의 입으로만 선포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교리를 통해서만 실천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존재 그 자체에서, 우리의 따듯한 손길에서, 우리의 부드러운 말속에서 한여름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미풍처럼 우리의 삶에 평화를 주고 행복을 줍니다. 일상의 말씀은 성령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살아가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아주 소소한 위로에서 가슴 뿌듯한 성령을 경험합니다. 불편함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열립니다. 가난함 속에서 십시일반의 도움으로 희망을 찾습니다. 아주 사소한 배려로 누군가의 얼굴에 훈훈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성령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아계심을 알려줍니다.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좀 더 많은 것을 축적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삶이 아닙니다. 이웃과 좀 더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요한 14:15-16)

  예수님의 새계명은 이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사랑을 통하여 보호자 성령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듯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는 서로 용서할 수 있게 합니다.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모두가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는 하느님 말씀의 증거입니다. 이는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함께 모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십니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줍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을 가르쳐줍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줍니다. 서로 다름을 그대로 인정해줍니다.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회의 모습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상주의자들의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희망인 것은 말씀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상주의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입니다. 그 현실이 세상적 가치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가치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는 세상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길은 넓고 편하지만 그 끝이 혼돈이지만, 하느님의 길은 좁고 불편하고 힘들지만 그 끝이 행복한 길입니다.

  지난 주 볼리비아 오지의 공소로 가는 모든 길은 좁고 위험한 비포장 도로였습니다. 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선교 신부님들은 우리를 초대했고 그 길을 갔습니다. 차 멀미를 뒤로하고 몰려오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위로 받았을 때 하느님의 현실은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대천사 가브리엘의 말에 온 몸과 마음을 바쳐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시골 처녀였습니다. 단지 다른 것은 마리아의 현실이 하느님의 말씀이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나 세상적 현실과 하느님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자주 하느님의 현실은 손해를 보고, 세상적 현실은 이득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현실은 불편하고, 세상적 현실은 편하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현실은 바보같고, 세상적 현실은 똑똑하다는 편견에 사로 잡혀있습니다.

  이런 갈등의 유혹에서 성령께서 세상이 가지 않는 길을 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줍니다. 진정한 평화를 줍니다.

  코비드의 위험이 약화됨에 따라 지난 2년동안 소강상태에 있던 우리 사회는 예전의 일상을 되찾아갑니다. 이에 우리 공동체도 점점 바빠집니다. 한동안 못했던 본당 야외 미사를 다음 주 주일에 다시 개최합니다. 야외에서 모여 주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기쁨을 나누며 성령께서 우리 공동체 안에 가득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주일인 19일에는 우리 교구의 보좌주교이며 신학교 교장이신 제임스 마사 주교님을 모시고 학생 견신 성사를 지냅니다. 우리 아이들이 견진 성사를 통하여 성령과 함께 믿음이 성장합니다.

  교회의 바람은 이들이 성령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며 성령께서 인도하는 길을 걸어가리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듯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믿습니다. 염려가 아니라 믿음이 그들을 더욱 단단하게 성장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 칭찬을 앞세웁니다. 칭찬이 그들을 버릇없게 하기 보다 스스로 더 잘 하려고 노력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믿음이며, 교회의 믿음입니다. 나아가 우리 부모님들의 믿음입니다.

  오늘 50일 간의 부활 시기를 마감합니다.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성령이 주님의 죽음으로 다락방에 숨어 불안에 떨던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었던 것처럼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한 우리 가정에 평화를 주길 바랍니다. 미움과 반목이 가득한 가정에 이해와 화해의 성령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잘못될까 염려가 가득한 가정에 믿음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우리 각 가정의 행복이 우리 공동체의 행복이 되길 바랍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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