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단상

2022년 3월 6일

오늘은 사순 첫째 주일입니다. 지난 수요일 머리에 재를 바르고 시작한 사순 시기도 어느덧 닷새가 지났습니다. 사십 일간의 사순 여정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곰곰이 생각은 해보았는지요?

   사순은 흔히 하느님과 함께 걷는 여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이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말하지만, 그래도 이 시기에 우리 삶에서의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깊게 깨달으려 정진하는 시기라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우리가 동참하면서 깨닫는 시기입니다. 사순은 영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시기입니다. 죽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삶으로 옮아감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용기를 내어라.” 사순은 바로 이 말씀이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기 위한 삶의 진실이며 지혜이며 하느님의 약속임을 깨닫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걷는 여정은 모든 여정이 그렇듯이 설렘이 있고 두려움이 있습니다. 신기할 때가 있고 지루할 때가 있습니다. 기쁠 때가 있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편할 때가 있고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힘차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때가 있고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목적지를 향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기를 갈망합니다. 그 행복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슬퍼하며 눈물 흘리고 굶주린 이가 행복하다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으면 행복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참고 루카 6: 20-23)

   그와 반대로 예수님은 또 불행선언을 하십니다. 바로 부유하고 배부르고, 지금 웃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유는 그들은 이미 위로를 받았고 더 받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참고 6: 24-26)

   사순 시기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고뇌에 찬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 답의 근간을 예수님의 말씀과 삶에서 찾으려 하는 것입니다.

   참 행복은 지금 당장의 배부른 돼지가 아닙니다. 배고프지만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어 함께 더불어 내일을 준비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사순 시기는 단순히 교회에서 정해진 기도를 하고 단식과 금육을 하고 자선함에 얼마간 더 넣고 뿌듯해하거나, 그렇지 못하여 죄책감에 아예 사순 시기를 무시하는 그런 시간이 아닙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의 인간적 고통과 한계에 도전하는 시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러한 인간적 한계와 고통은 우리의 삶의 저주가 아니라 삶을 더욱 깊게 깨닫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며 함께 더불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온몸과 마음으로 깨닫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한계의 끝은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구세주이심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아들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 직후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끕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며 그리스도임을 하느님께서 드러내셨는데 예루살렘이 아닌 척박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로 보내신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늘 복음과 마태오 복음은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가셨다고 하지만, 마르코 복음 “광야로 내보내셨다.” 하고 표현합니다. 더 정확히 내보내셨다는 표현의 원어는 “내쳤다”는 뜻이 더 정확하다고 합니다. 즉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치신 것입니다. 그 목적은 단식이 아니라 유혹과의 직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의 첫 과제는 바로 “유혹”이었습니다. 인간적인 한계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이 유혹입니다.

   배고픔이나 슬픔이나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 한계의 끝은 죽음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유혹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보다 당장의 빵이 더 중요하다.’는 유혹, 남들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유혹,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아니라 더 이기적인 세상적 계산에 의지하려는 유혹,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내 뜻대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유혹, 등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당신을 믿어달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통이 오더라도 믿음으로 참고 견뎌내 달라고 하십니다. 혼자서 힘드니 함께 더불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우며 견뎌내면 당신께서 늦지 않게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하느님은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유혹은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두려움이 너무 커서, 걱정이 너무 커서, 잘못된 욕망에 사로잡혀서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미워하고 원망하며 떠나가서 자신도 모르게 사회악에 물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칩니다. 예수님께도 쉽지 않은 과제였습니다.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예수님은 가장 척박한 땅 광야에서 기도하고 단식하며 하느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유혹을 물리치고 당신 몸과 마음 모두를 인류의 구원을 하려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받칠 준비가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더욱 섬뜩한 대목은 이것입니다.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 4: 13)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결국 사순 시기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행복을 방해하는 유혹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다시 확립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사순 시기가 되면 ‘주님의 기도’를 거꾸로 읽어보며 묵상해봅니다. “아멘, 악에서 구하소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러면 기도의 결론은 바로 유혹에 빠지지 않아 삶의 악에서 구원받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배고프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삶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고, 그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로써 아버지의 이름이 빛나는 것입니다.

   벌써 사순 5일째입니다. 남은 기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담을 위해 고뇌하는 시간에 충실해야겠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이로써 우리 삶의 두려움이나 걱정이 아닌 가슴 벅찬 자신감과 희망으로 오늘을 기쁘게 살아가며 내일을 기대할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루카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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