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과 응답

2018년 8월 11일

지난 주말에는 새로 임명된 제27기 사목과 임원진 피정을 위해 1박 2일 뉴저지 뉴턴 성바오로 베네딕도 수도원에 다녀왔습니다. “부르심과 응답”이란 주제로 하느님 말씀 안에서의 봉사에 대해 생각하고 단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피정이 끝난 주일 오후 뉴저지 패터슨의 한 성당에서 우리 본당 출신인 박 주연 수녀님의 종신 서원 미사에 참석한 것입니다.

“부르심과 응답”이란 주제로 피정을 하고 살리시오 수녀회의 종신서원 예식에 참례하면서 하느님의 섭리가 위대하심을 다시 느꼈습니다. 부르심에 대한 응답의 은총을 목격함으로써 하느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 힘들지만 참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성소”라고 합니다. 성소라고 하면 흔히 사제나 수도자를 연상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사실 성소는 참 간단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부르시어 당신의 말씀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는 모든 이가구원의 선택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성소, 즉 부르심과 응답에 대한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했다. 그러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요한 15: 16) 여기서 열매는 더 많은 이가 그 말씀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나아가 믿는다는 것은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입니다.

이번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인 에페소 공동체에 보내는 편지에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곧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22-24)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바로 성소에응답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섬김”의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러오신 것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높고 낮음이나, 빈부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즉 상호 배려와 존중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강하고 약한 자, 높고 낮은 자,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주인과 종……등등 이렇게 상하로 나누어 군림하기를 좋아합니다. 이에서로 경계하고 시기 질투하고, 반복하며 미워합니다. 이는 세상적 욕망의 열매입니다. 결국 좌절과 분노와 파괴의 씨앗인 것입니다.

하지만 소위 속세에 살면서 서로 섬기는 즉 상호 배려와 존중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이 가장경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뜨뜻미지근한 믿음 생활입니다.

우리 신앙의 현실이 열정적이지 않고 뜨뜻미지근하여 제맛을 잃은 다 식은 커피 같지는 않은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하고 신앙의 자격이 없다고 운운하는 것은 아직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원 수사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기도가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주 하느님, 제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제 앞길도 보이지 않으며,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고, 당신의 뜻을 따른다는 사실이 당신을 실제로 따르고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려는저의 갈망이 실제로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라고 믿습니다……비록 제가 잘 알지 못하더라도 제가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저를 옳은길로 인도해주심을 압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리 길을 잃고 죽음의 그늘에서 헤맬지라도 당신을 항상 신뢰하겠습니다. 당신은 저를 혼자 위험에 처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저는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당신의 뜻을 완벽하게 따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좌충우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당신을 따르려는 우리가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따르려는 믿음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로 더 성숙해집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새로 임명된 사목 위원들의 봉사를 기대합니다. 또한 종신서원을 받은 박 주연 수녀님의 섬김이 더 많은 사람들의 회개와 신앙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갈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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