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한: 바쁜 중에 쉬어 가는 여유

2018년 7월 22일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쉬어라.” (마르코 6: 31)

어느덧 7월의 한여름을 알리는 초복이 지났습니다. 무더운 더위에 오늘 연중 16주일 복음(마르코 6: 30 -34)을 읽으며 생각나는 시는 바로 이육사님의 “청포도”입니다.

왠지 아련한 그리움과 한여름의 열기에 한가한 동네 길이 연상되며 옛 추억으로 이끌리는 듯한 시입니다. 무더위의 불편함이 오히려 한가함으로 극복하듯이 복잡한 마음도 오히려 한 번 쉬었다 감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 같습니다. “청포도” 시가 그렇습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다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북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어릴 적 여름이면 가족끼리 더위를 피해 천렵 삼아 간 포도밭이 생각납니다. 울창한 포도 넝쿨 아래 펼쳐진 평상에 앉아 갓 따온 포도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노라면 더위를 잊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이 포도알만큼이나 풍성하게 넘칩니다.

그런데 이육사님의 청포도도 곧 찾아올 “고달픈 손님”을 기다리며 달콤한 청포도와 함께 회포를 풀려는 소박하지만 넉넉한 기다림을 묘사합니다. 그러면서 왠지 분주한 손님맞이가 아니라 한갓지고 여유로운 손님맞이 준비라 오히려 평온한 마음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는 복음선포 여정에서 막 돌아온 제자들에게 한갓진 곳으로 가서 편히 쉬라고 권합니다. 바로 피정입니다. 피정은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입니다. 삶의 여유는 우리를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고 그 넉넉함이 서로 나누고 위로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고달픈” 군중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먼저 가서 그들을 기다리며 고달픈 삶의 위로와 치유를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여유조차 없이 “목자 없는 양들” 앞에서 고달픈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는 장면은 “청포도”의 시구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나를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북 적셔도 좋으련…”을 연상케 합니다.

고달픈 양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피곤함과 불편함도 오히려 행복과 기쁨으로 승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무더운 여름 휴가를 떠날 생각도 못 하고 일상의 무게에 고달픈 몸으로 일터와 집을 오갑니다. 그분들이 오늘 청포도 같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소박하지만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넉넉함에 두 손을 함북 적시더라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은쟁반에 하얀 모시 수건 준비하여 시중드는 아이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넉넉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로 서로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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