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일

2022년 10월 16일

2003년에 개봉한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는 어느 날 주인공에게 전지전능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의 능력을 주인공에게 잠시 전해주고 휴가를 떠난 사이에, 주인공이 사람들의 기도 내용을 모두 들어주면서 일어난 일들을 코믹하게 전해줍니다. 영화의 내용처럼 ‘만약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신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하면서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기억해보도록 합시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종종 신자들에게서 상반되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어떤 분은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한 끝에 하느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하면서 하느님께 깊은 감사와 찬미를 전하는 반면, 또 어떤 분들은 “하느님께서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도하기 싫어요!”라고 표현하는 소리를 듣게 되기도 합니다.

  진심 어린 간절한 나의 기도가 이뤄지지 않을 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오늘 복음의 시작 말씀이 기쁘게 들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나의 육적인 건강과 영적인 건강의 문제로 인해서 기도를 할 수 있는 의욕과 힘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순간에 내가 다시 기도할 수 있게 해주고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은 바로 공동체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아말렉족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싸움이 길어지면서 손이 무거워진 모세는 혼자서의 힘으로는 더 이상 손을 들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모세의 두 손을 받쳐 주어, 모세가 계속해서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이 아멜렉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고, 무거워진 손을 공동체가 받쳐주는 모습은 지금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인 교회는 함께 기도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기도하기 힘든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곤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펜데믹으로 인해서 공동체가 모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함께 모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힘만으로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완전히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내 기도가 이뤄지지 않는 순간이 지속될 때입니다.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서 온 마음과 온 정신과 온 힘을 다해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기도를 계속해서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그것이 나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정과 정의에 관한 것이며,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 기도가 들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기도하는 의미를 잊어버리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되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지금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 복음의 어떤 과부가 보여준 모습을 기억해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루카 11,3)하고 줄곧 졸라대었습니다. 과부는 자신이 심판관이 되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대로 해달라고 재판관에게 청하고 있지 않습니다. 판단하는 몫을 재판관에게 맡기고,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종종 오늘 복음의 과부와 다르게 기도하곤 합니다. 내가 재판관이 되어,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알 수 있게, 내가 하는 기도를 하느님께 이뤄달라고 요청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 하느님을 원망하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살아계신 야훼 하느님이십니다. 판단을 하고, 때를 정하고, 방법을 정하고,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 모두를 하느님께서 스스로 결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항상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첫 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하느님 말씀이 담겨져 있는 성경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안에는 하느님 말씀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 그리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님과 가까워  졌는지에 대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불의한 재판관이나, 무능력하고 의지가 없는 절대자가 아니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기도하고 의지하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까지 우리를 위해서 희생제물로 내어주실 만큼 사랑이 가득하고, 또 적극적인 분이라고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정의와 올바름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와 올바름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청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가장 훌륭한 기도인 미사를 봉헌하면서, 내가 먼저 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변하게 해달라고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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