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

2022년 5월 22일

지난주에 우리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새 계명을 주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성체성사를 기억하고 성체성사의 의미를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부활 제6주일 강론을 시작하면서 지난주 복음을 언급한 것은, 오늘 복음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장면으로 지난 주 복음이 포함된 요한 13장부터 함께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 최후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시는 요한 14-17장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4번에 걸쳐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① 14,16-17 ② 14,26 ③ 15,26 ④ 16,7-15)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면서 “보호자” “파라클레토스”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파라클레토스는 “~의 옆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파라”와 “불린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클레이토스”가 결합된 단어로, “옆에 있도록 불린 자”라고 직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누구의 옆에 있도록 불러주셨을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되는 상황을 생각해볼 때, 우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함께 있었던 제자들을 위해서 성령을 불러주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최후의 만찬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보호자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 당신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요한복음서가 집필된 기원후 100년경의 신자공동체입니다. 당시 교회는 세상의 박해를 받고 있었고, 예수님께 직접 교육을  받은 제자들과 그들의 제자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의 의미를 두고 혼란을 겪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방인들에게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되면서 할례에 대한 갈등을 겪은 것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잘 못 이해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이후의 사람들이 당신께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당신 말씀의 의미를 오해할 것을 미리 아시고, 보호자 성령님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은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14,26)는 말씀과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14,29)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박해로 인해서 믿음이 약해지고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2000년 전 예수님과 만났던 제자들과 기원후 100년경의 초대교회 신자들 만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지 못하는 지금 우리들은 그들보다 더 심각하게 믿음이 약하고 말씀을 정확히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까지도 끝까지 사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청하신 보호자 성령님은 그래서 지금도 우리와 교회 안에서 함께 활동하시며 살아계시며,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 역시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고 볼 수 없다.  다만 세상의 평화와 다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평화”를 통해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배우고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세상이 보기에 성령이 주시는 평화는 불과 같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끊임없이 선택하도록 우리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끝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참 평화 참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 하느님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될 때 계속해서 성령의 도움을 청하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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