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방법

2018년 11월 12일

아이티로 의료선교를 떠나려 짐을 싸면서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본당 신부가 주일 본당을 비우는 것처럼 불안한 것은 없습니다. 물론 보좌 신부님들을 못 믿어서도 아니고 어떤 큰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불안합니다. 그래도 돌아오면 “지난 주일 신부님이 안 계셔서  허전했어요.” 라는 말이라도 들으면 왠지 또 흐믓해집니다. 인간적인 욕심은 어쩔 수 없습니다.

예전에 어느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식구들을 놔두고 친정에 며칠 다녀오면 집안이 엉망이 되어있으면 화가 나고 답답했는데 어느 날 아이들이 커서 집안 정돈을 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 큰 애들이 대견하면서도 왠지 섭섭한 마음이들더랍니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갈대와 같습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해주고 나아가 자신감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몸이 힘들어도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사랑의 발로이며 이웃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난 복음의 말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에 경중이 있고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신비처럼 하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우리가 갈망하고 추구하는 사랑이며 하느님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사랑은 또한 하느님의 나라의 문을여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일 복음(마르코 12: 38-44)에 이어 사랑의 방법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거나 약한 이들을 착취하는 것은 위선자이고 단죄의 대상이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은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끼어서 나누어 주는 것이 작더라도 더 큰 위로와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도움은 그 도움을 받는 이뿐만 아니라 도움을 준 이도 참으로 뿌듯한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몇 년 전에 볼리비아로 의료선교를 떠날 때 어느 안나회 회원이 미사 후 제 손을 잡고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봉투 하나를 건네면서 익명으로 볼리비아 선교를 위해 써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금액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큰돈은 나중에 더 귀한 데 쓰는 게 어떠냐고 여쭤보니 힘들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는 지금이 귀한 데라고 말씀하셔서 저의속 좁음을 반성했습니다.

그분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녀들이 주는 용돈을 한푼두푼 모아 둔 이유가 바로 그렇게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려고 모아두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과부의 렙톤 두 닢의 이야기가 성경에서만 읽을 수 있는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살만한 세상이고 하느님의 말씀이 실현 가능한 말씀임을 또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미션에도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셨습니다. 이번에 총 9명의 봉사자가 아이티 꽃동네로 미션을 떠납니다. 단순히개인적인 봉사가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가 파견한 봉사자들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도움이 이들을 통해 더 크게 아이티의 병약자들에게 베풀어질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번 2박 3일의 짧은 의료 선교가 우리 공동체의 사랑을 나누는 나눔의 시간이고 직접 봉사하는 봉사자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 모두가 더 큰 은총을 받는 가슴 뿌듯한 시간이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넉넉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그 미소를 아이티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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