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1년 3월 28일

  오늘 우리는 교회의 전례 가운데에 두 가지 극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전례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렬로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예수님을 맞이하는 상황을 재현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전례에 성주간 동안 예수님께서 겪으실 수난을 미리 알리는 주님의 수난기가 선포됩니다. 이렇게 오늘 전례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입성과 예수살렘에서의 수난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의 주제를 거행합니다.

  동시에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전례는 가톨릭교회 전례의 정점인 성삼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지상 생활의 마지막 여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곧 그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모습을 성주간 전례를 통해서 다시 상기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예수님에 대한 증오를 키웠는지,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이 왜 극단적으로 기울었는지 들여다보게 됩니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처음으로 하신 일은 성전을 정화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삶과 신앙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처럼 여러 곳에 성당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시면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에게 주신 계약궤가 모셔진 이스라엘에만 성전이 자리했습니다. 그래서 파스카 축제 기간이 되면 이스라엘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방문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매주 주일 미사를 봉헌하는 것처럼,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파스카 축제 때에 성전을 방문하는 것은 자기 신앙의 뿌리를 새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을 방문하셨을 때, 성전은 장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사제들에게 세를 내고, 성전에 예물을 바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손쉽게 장사를 하였습니다. 당연히 성전은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 아니라 특정 부류가 잇속을 챙기는 곳으로 더럽혀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장사꾼들을 모두 몰아내며 큰 소동을 일으키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일은 이렇게 성전을 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성전 정화라는 주제가 일러주듯이 우리 마음을 정화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는 사순 시기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에 제1독서로 요엘 예언서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언서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하십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슬픔을 나타내는 것으로 회개와 관련하여 자기 죄에 대해 뉘우치는 것을 뜻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라고 하십니다. 곧 마음으로부터 회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성전 정화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보면 성전 정화 사건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처럼, 사람들이 그분을 환영한다거나 그분의 말씀을 들으러 찾아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회개하고,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그분께 화살이 되어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환영과 그분의 수난 사이에는 이렇게 성전 정화 사건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안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주민들처럼,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아직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모습이 자신에게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인들에게 바라셨던 것, 마음의 정화와 진실한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을 찾고, 예수님께서 성전을 허물라고 말씀하시듯이, 오랜 시간 동안 자기 안에 굳어져 버린 불순종한 자세를 무너뜨릴 수 있을 때,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맞이하는지 깊이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교회 전례에서 가장 정점의 시기인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당신께서 겪으실 고통과 맞바꿔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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