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2021년 12월 26일

우리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에서 보내고, 가정의 생활환경에 적응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도 달라지게 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체가 가정이듯, 교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신앙 공동체도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신앙이 생겨나고, 신앙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의 유아세례, 첫영성체는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는 것으로, 선교사들이 먼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가정공동체가 맡고 있는 핵심적인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우리가 신앙을 기르고 실천하는 기초를 닦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정 안에서 배우고 실천해 나갈 때, 그 영향이 주변으로 확대되어 나가고 우리 사회가 복음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하고 있는 성가정은 온 가족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어받고, 그 안에서 복음이 실현되며, 선한 영향을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가족 전체가 신자이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성가정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가정공동체라도 구성원들과의 관계 안에 복음이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하느님을 모르는 가정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모든 가정은 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아 가족들이 서로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실천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가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의 유년 시절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권위 있는 가르침과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뒤로하고, 짧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는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가정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러줍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부모와 함께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고 전합니다. 오늘날 나자렛에서 예루살렘까지 차로 약 2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마리아와 요셉께서는 그 먼 거리를 며칠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렇게 먼 길에 오르신 이유는 바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께서는 신앙의 열정을 지니신 분들이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유년 시절부터 올바른 신앙교육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 점은 왜 예수님께서는 축제 기간이 끝난 후에도 며칠 동안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계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사흘 뒤에야 예수님을 찾았는데, 그분께서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행동에 대한 의아한 생각과 함께 복음을 묵상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축제 기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계신 점은 특별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 주님 성탄 대축일을 지냈는데, 비록 축제일은 지났지만, 여전히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뜻을 전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말씀하시며, 우리 또한 늘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러주십니다. 복음은 이어서 이 일이 일어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돌아가셔서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며 지냈다고 전합니다. 축제일에만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늘 아버지의 뜻 안에 머물며 가족 구성원들과 친교를 이루는 가정이 바로 하느님께 순종하며 지내는 성가정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가정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께서 아들 예수님과 함께 축제일에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러 성전에 가는 장면은 지금 우리 시대에는 온 가족이 주일과 대축일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모습과 이어집니다. 그리고 축제일이 지난 다음에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에 남아 계신 모습은, 성가정은 가족이 주일에 성당에서 미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성가정은 단순히 화목하고 무탈한 가정을 일컫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내는 성탄의 분위기가 우리에게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지만, 실제로 마리아께서 혼인하기 전에 예수님을 잉태하신 일에서 시작해서 예수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성가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성가정은 우리가 원치 않는 여러 시련과 아픔을 겪으며 성장할 것입니다. 일을 지내며 성가정의 모습을 묵상해 보고 각자 가정에 필요한 신앙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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