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

2022년 1월 23일

구약 시대에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론에게 정복당합니다. 그리고 두 나라 가운데 남쪽에 자리한 유다 왕국은 바빌론 유배라는 뼈아픈 사건을 체험합니다. 나라를 잃은 왕과 백성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 이방인의 땅에서 살아야 하는 서러움을 겪었고, 무엇보다도 바빌론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면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마저도 잃어갈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새로운 형태의 종교생활을 통해서 자기들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라는 의식을 잃지 않고 굳건히 신앙을 유지합니다. 그들은 특정한 장소에 모여 율법과 시편을 읽고 기도하는 집회를 가졌고, 훗날 회당을 세워서 지속적인 모임을 갖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미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 파괴된 성전이 재건된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지방 곳곳에는 회당이 자리하여 유다인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복음에는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 유년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안식일에 회당을 방문하여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셨음에 틀림없습니다. 공생활 동안 여러 마을을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의 주요 활동은 대부분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분께서 자라신 나자렛에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봉독하시는 장면을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이 본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예언자적 역할을 드러내고,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오늘 복음의 요지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들 가운데에 직접 실현시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회중이 듣는 가운데에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신원과 사명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 모습과 함께 그분의 주요 활동이 백성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개인적으로 복음을 묵상하면서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회당에 모여 말씀을 나누는 복음의 장면을 떠올리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나누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회당은 성전과 달리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와 비교하면, 회당은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 아니라 신자들이 모여서 미사 대신 예식을 행하는 공소와 같은 곳입니다. 유다인들은 율법에 따라 정해진 날에 이스라엘의 성전을 방문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회당에 모여서 기도하는 것은 율법에 따른 관례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봉독하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은 유다인들이 스스로 행한 신앙의 형태였습니다. 이들은 사제 없이 회당장을 중심으로 깊은 신앙 활동에 매진하였습니다.

   회당이 중심이 된 유다인들의 신앙생활은 한국 천주교회의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하여 신앙생활을 했던 점을 떠오르게 합니다. 조선 시대의 신앙인들은 사제의 부재로 미사와 고해 성사를 거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을의 회장을 중심으로 교리를 공부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신앙생활은 그 정점인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꽃이 피어나지만, 성사를 자주 접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교우촌에서 이루어진 신앙생활은 신자들이 순교에 이르기까지 자기 신앙을 증언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사생활 외에도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신앙의 성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코로나 시대에 말씀을 가까이하는 신앙생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본당에서 외적으로 신앙생활의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적지 않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영적으로 무기력함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모시는 행위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박해 시대를 겪는 때와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신앙생활의 제약이 우리의 내적인 상태를 계속 가두도록 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과거 신앙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생활을 해나갔던 모습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어려운 시기일수록 말씀을 자주 접하며 신심을 지니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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