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일

2022년 2월 27일

신학교에 2말 3초라는 말이 있습니다. 2학년 말에서 3학년 초라는 의미인데, 신학생들이 학교를 가장 많이 떠나는 시기입니다. 보통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후 3학년으로 복학하는 사이의 휴학 기간에 많은 신학생들이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저도 군대를 전역하고 신학교에 복학한 후 학교와 본당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첫영성체를 하면서 처음 사제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단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저도 학교를 떠나야 하는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학교를 그만두는 동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됐습니다. 그전에는 한 번도 사제직에 대한 꿈이 바뀐 적이 없던 제 자신의 모습만 생각해서 신학교에 들어올 때부터 성소에 대한 확실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길을 선택한 동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간접적으로 느낄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어떤 사람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타인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 점을 자기 삶에서 발견하게 될 때 그 타인의 상황을 공감하고 그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 성찰하는 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합시다. 나는 그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눈으로 나와 그 사람을 바라보면 어느 순간 나와 그 사람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눈으로 봤을 때 나도 잘못된 언행들이 있다는 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인인 자신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바라보시고 용서하시는지 살피면 나도 어떻게 죄가 있는 타인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어떤 악행의 경중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하느님 앞에서 나 또한 죄인이라는 점을 깨달으면 내 눈으로 봤을 때 죄인인 사람에 대해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직접 타인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타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 없다고 하시며,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는 사람이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부족함이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남의 과실을 보고 지적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치유해 주지는 못합니다. 자신을 치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치유해 주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점을 알고 인정하고 뉘우치는 사람이라야 죄로 인해 병든 다른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타인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느님 앞에서 죄인인 것처럼 다른 이도 죄에 넘어질 수 있다는 점에 연민을 가지고 공감할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지닌 부족함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지닌 연약함을 잘 돌볼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예수회 신부인 헨리 나웬은 그의 저서 가운데 하나의 제목이기도 한데 자신을 일컬어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며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인간이 겪는 고통을 실제로 받으셨고, 그 때문에 단지 말씀으로만 인간에게 위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고통에 함께하시며 그들을 치유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자기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시는 예수님의 위로를 얻습니다.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모든 사람은 누구나 죄와 고통을 경험하고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부끄럽고 다시 떠올리기 싫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남아있는 좋지 않은 기억들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그냥 잊거나 묻어두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그 아픔들이 자신의 모습을 변질시키고 타인에게 같은 아픔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돌아보고 상처를 잘 싸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과정은 분명 우리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만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 안의 들보를 빼내는 작업은 다른 이의 눈에 있는 티를 제거하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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