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22년 4월 24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시각화된 자료를 보면서 어떤 일에 대해 더 깊은 몰입감과 이해를 갖습니다. 성경을 접하는 데에 있어서도 미사 때에 선포되는 복음을 주의 깊게 듣는 것보다 복음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를 시청하는 것이 훨씬 더 크게 기억에 각인되기도 합니다. 물론 로마서 10장이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고 언급하듯이, 말씀을 경청하는 것은 기도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깊은 묵상을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해도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명망 있는 영성가들이 환시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신비를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보고 더 깊은 하느님 체험으로 나아가듯이 눈으로 말씀과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활동은 신앙생활을 성숙시키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고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은 내적생활에 큰 도움을 줍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부활시기를 지내며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보고 자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깁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간 첫날 저녁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습니다. 지난주 부활 대축일 복음을 다시 상기하면, 같은 날 이른 아침에 마리아 막달레나, 베드로,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반나절이 지났지만 오늘 복음이 전하는 것처럼 저녁이 되어도 여전히 유다인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시어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자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기뻐합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는 것이 여러 차례 그분의 부활에 관한 소식을 듣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점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세 차례나 예고했지만 제자들은 비어 있는 무덤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눈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그분의 부활을 깨닫습니다.

   복음의 후반부도 비슷한 장면이 소개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처음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토마스는 예수님을 직접 뵙기 전까지는 그분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시자 그는 예수님을 뵙고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동료들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토마스는 예수님을 마주하고 그분의 상처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진정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사실을 상기합니다. 미사를 드리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우리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제자들이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뵌 것처럼 그분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토마스가 예수님을 뵙기 전까지 그분의 부활을 의심했던 것처럼 어쩌면 아직 부활에 대한 신앙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부활 대축일을 지내면서 부활에 대한 깊은 체험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기쁘게 부활 축하 인사를 건네지만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면 단순히 부활 시기의 전례가 전해주는 분위기에 젖어 들어 있을 뿐 진정한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부활 시기를 지내면서 제자들과 토마스가 예수님을 직접 뵙고 그분의 부활을 믿었듯이 기도 중에 예수님을 눈으로 바라보며 그분께서 주시는 부활의 메시지를 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부활 시기를 지내면서 퀸즈 본당의 모든 교우들이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부활의 의미를 발견하고 은총을 가득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번 주보 강론을 끝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6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호의를 베풀어 주신 본당의 신부님들, 수녀님들, 직원들, 사목회 위원들을 비롯한 모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드린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아서 감사드리면서도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41) 하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모두 갚아 주실 것입니다. 건강하시고 늘 주님 안에서 기쁘고 화목한 본당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