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대축일

2021년 5월 23일

오늘 우리는 부활 시기의 마지막 날인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지 40일째 되는 날 승천하시고, 그로부터 열흘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려주십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 행하셨던 아버지의 사명은 성령을 받은 제자들을 통해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사명은 성령을 통해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 부활 시기의 정점인 성령 강림 대축일은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세상에 파견되었듯이, 우리로 하여금 부활 시기를 지내며 체험한 신앙을 매일의 삶에서 증거하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교회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지향하며 성령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성령께서는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과거의 때를 씻어주시고, 새로 태어나게 하시며, 신앙의 활기를 불어넣으십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성령께서 제자들 위에 내리시자, 그들이 여러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는 장면을 전합니다.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듣고 놀라워합니다. 이는 복음에서 찾아볼 수 없던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숨어 지냈던 제자들은 이제 새로운 사명과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거자로 변모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령의 활동이라고 믿는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던 때에 사이가 좋지 않은 형제와 화해한 일입니다. 당시 서로가 화해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마음이 맞지 않아서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성령께 청하는 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성령에 대해서는 수업 시간을 통해서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지, 그분의 존재를 느끼거나 그분의 은총을 청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의 활동이라고 확신이 든 체험을 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주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저를 이끄는 듯한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3시간 동안 잠을 못 이뤘는데, 미워하고 있는 형제에게 용서를 청해야 한다는 마음이 저를 재촉했습니다. 겨우 그런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잠이 들었는데,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성령강림 대축일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해하지 못한 형제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성령께 청했습니다. 저녁 미사를 드리기 전이었는데, 전에 느꼈던 것처럼 온몸에 활력이 솟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사 후에 곧바로 그 형제에게 전화를 했고 직접 찾아가 용서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 믿습니다. 성령께서는 신앙의 활기를 주시어 전에 지니고 있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은총으로 힘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교회는 이렇게 힘을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고 성령을 불어넣으시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십니다. 새로운 사명과 함께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두려움을 물리치고 복음을 전하러 세상에 나갑니다. 사도행전 2장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 베드로가 유다인들과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설교를 하는 모습은 전하는데, 그의 설교는 전에 예수님을 배신하기도 했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의 베드로와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며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간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며 세례를 받습니다. 그렇게 삼천 명가량의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 자신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총을 청합시다. 나약함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성령께서는 일으켜주십니다. 성령의 활동은 주님이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주시리라는 신뢰를 가진 이들에게 온전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실제로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계심을 믿고 그 영께서 우리를 어떤 길로 인도하시는 깨닫도록 그분의 활동을 의식하도록 합시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다시 새로운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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