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

2021년 4월 25일

 우리는 오늘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 주일을 지냅니다. 일반적으로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뜻합니다. 성소 주일을 기념하면서, 우리 각자가 어떻게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세례를 받았는지, 또는 유아세례를 받아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부모님을 통해서 자신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이끄셨는지 상기해 봅시다. 더불어 하느님께서 지금은 우리 자신을 어떠한 방식으로 부르시고 계신지도 떠올려 봅시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우리 삶의 특별한 순간에만 자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부르듯,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어떻게 응답하고, 어떻게 그분과 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묵상해 봅시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이 코로나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어떻게 부르시는지 생각해 봅니다. 저는 많은 분들의 기도 속에서 다행히 별문제 없이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교구의 복지시설에서 선배 신부님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저를 신학교에 추천해 주신 아버지 신부님의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 신부님의 본당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던 중, 신부님께서 하신 강론이 기억에 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늘 현재 제 상황을 염려하시고, 별문제 없이 학업을 수료할 수 있도록 계속 격려해 주시곤 하십니다. 그런데 그날,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제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어쩌면 제 자신이 처한 상황도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랜 해외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과 동료 신부들과 긴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 자신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뜻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앞길만 바라보며 어떻게 계속 학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만 궁리하다 보니, 현재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삶의 자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을 돌아보니, 아버지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현재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말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기대하지 못한 집안의 경사에 함께 할 수 있었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지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처한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좋은 것을 주신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오늘 우리는 착한 목자에 관한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에 비유하시며, 당신께서는 삯꾼과는 달리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당신 사명에 얼마나 충실한 분이신지를 전합니다. 동시에 양들인 우리가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는데, 그들이 당신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은 아마 직접적인 의미에서 당신을 모르는 비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에서는 원래 예수님의 울타리에 있었지만 잠시 그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간 양들을 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들이 울타리 밖에 있는 이유는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방황했거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이 흔히 겪는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온전한 상태로 제 자신이 예수님의 울타리 안에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 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목소리를 들었어도 듣지 않은 척을 할 때가 있습니다.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이 분명히 자신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소 주일을 맞이하며, 다시 침묵 가운데에 현재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시는지 머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짧은 시간에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켜버린 이 시대를 살면서, 과연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주시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외적으로 신앙생활의 형태는 과거에 비해 제한되어 있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와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현재의 자리에서 삶을 살기까지 하느님께서 크신 은총으로 이끌어주셨음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삶에도 그분의 인도하심에 우리 자신을 맡기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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