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힘과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2024년 4월 28일

지난주,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성소 주일을 묵상해 보며 전 세계 각지에서 각자 자기 위치에서 묵묵히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던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기억하는 날이었습니다. 참으로 이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선물이고 이분들이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은총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요즘, 같은 신학교를 다녔던 선배이자 손님 신부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 이외에 다른 곳에서 선배 신부님들이 맡은 소임에 대한 소식과 안부를 들었을 때 함께 성소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고 선배들이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또한 더불어, 최근에 제가 다녀온 ‘Rising star’와 교구 성체 대회에서 만날 수 있었던 평신도들의 모습을 보며 또한 각각 다른 나라, 다른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하느님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대단했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을 뿐, 어쩌면 우리도 모두는 이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같은 하늘, 다른 곳에 있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을 바라본 채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비록 다른 면이 있을지라도 하느님이라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오늘 복음 말씀의 핵심이라고 보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하나인데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가지각색일 것이며, 가지는 반드시 나무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가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뿌리와 나무를 통한 길이여야 하지, 외부에서 새들이나 동물들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뿌리에서 얻은 영양분으로 열매를 맺으며 그렇게 나무에 더 단단히 붙어있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힘을 얻을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쉽게 유혹에 흔들릴 수 있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알며 지금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가며 하느님의 지혜를 찾는 사람들이야말로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1독서는 사도행전의 말씀으로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을 줄 아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독서에서 부각을 드러내는 주인공은 사울과 바르나바입니다. 사울은 후에 바오로가 되는 인물로서 한때는 유다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했던 사람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첫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는 스테파노의 순교에 있어서 또한 사울이 그 주역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다는 그들의 심정도 이해가 갈 수 있습니다. 혹여 그를 받아들였다가 또 다른 형태의 학살과 박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르나바를 비롯한 사도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사울이 설교를 하고 제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도들이 사울이 했던 일들을 알면서도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성령 안에 머물렀기 때문이고 다른 말로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하느님의 지혜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사울과 바르나바, 사도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있기를 청해봅니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생각하는 판단과 사고방식이 다 다릅니다. 어쩌면 모든 사도들이 사울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선택과 판단이 다소 위험하고 불안했을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상대방 사이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생깁니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하느님의 힘이 작용합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해를 입을 것까지도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부부 사이에서나 부모 자녀 사이에서 몇 명 안 되는 그 단위에서도 서로 바라보는 것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 열쇠인 것처럼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해하거나, 인내하거나. 그럴 수 있을 때 열매는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라고 권고합니다. 사랑하기 위해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 앞에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지혜를 주셔서 우리 안에 성령의 은사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우리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또는 인내할 수 없을 때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있습니까? 나에게 누군가를 사랑할 생각이 없는데 나는 성체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의 그 목숨까지 바치신 사랑을 어떻게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에 너무 연연하거나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열매를 맺으시는 분, 뿌린 씨를 거두시는 분, 약속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예수님 안에 머물 수 있기를 우리는 믿고 바라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힘과 지혜가 가득하시기를 청하며 기쁘고 행복한 부활 제5주일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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