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2년 11월 13일

오늘은 연중 제33주일로 가을이 무르익어 감에 따라 올해 전례력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무성하던 나뭇잎도 가을바람에 다 떨어졌고, 몇몇 잎사귀만 앙상한 가지를 꼭 잡고 버틸 뿐입니다. 그렇게 앙상한 가지 사이로 훤히 보이는 하늘이 점점 차가워집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 6)

  이제 다음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기점으로 지난 대림 1주일로 시작한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전례력 한 해를 갈무리하며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후회하는 점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 공동체가 참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코비드 팬데믹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고조의 위험성이 꺾여서 심적으로 안정을 되찾아가고 이에 따라 본당의 큰 행사들을 무리 없이 즐거운 잔치로 잘 치렀다는 사실에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면서 자연히 들게 되는 것은 유종의 미입니다. 모든 일에 끝을 잘 마무리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잘 마무리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11월을 위령의 달로 정하는 것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갖은 삶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모든 것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위령 성월의 시작에 저희 선친 하태임 레지나의 장례에 많은 분들이 기도와 위로와 격려를 해주셔서 저희 가족은 많은 위로를 받고 하느님의 사랑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사랑의 부조금을 십시일반 내주셔서 따듯하고 훌륭한 장례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이에 가족은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 성당에 소정의 감사헌금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기도와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오늘 복음은 위령 성월과 전례력의 연말에 맞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최후의 심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은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세상의 멸망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멸망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사제들뿐만 아니라 바리사이나 사두가이가 들었다면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돌로 쳐서 당장 죽이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21: 7) 하고 물어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믿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사실 위의 예수님의 말씀은 서기 71년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성전은 웅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었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성전을 그렇게 잘 지은 것은, 그가 건축에 조예가 깊었고 또한 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에게 잘 보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성전을 지은 지 백 년이 되지도 않은 새 성전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된 것입니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전에 가면 오로지 서쪽 벽만이 우뚝 서 있어서 유대인들은 이 벽에 기대어 기도드립니다. 이 벽이 무너져 버린 성전에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벽을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이라 부릅니다. 이는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후에 유대인들이 이 벽에 모여 통곡을 했다는 유래가 있습니다.

  이렇게 성전이 완전하게 무너진 사건은 유대인의 로마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됩니다. 유대의 독립전쟁은 로마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세계 방방곡곡으로 떠돌아다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아름다운 성전도 세상 사람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만에 새 성전을 지을 수 있다고 공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돌과 벽돌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당신의 수난과 부활의 기적으로 우리의 가슴 안에 지은 성전입니다. 아무도 파괴할 수 없는 견고한 성전을 말씀하십니다. 굳은 믿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세상의 끝이 다가오듯 가을이 무르익고 겨울이 다가옵니다. 낙엽이 떨어지며 봄을 준비하듯이 우리도 겸손히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는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며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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