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1년 10월 24일

  오늘은 연중 제30주일 10월 24입니다. 어느덧 10월도 저물어가고 만추의 아름다움을 기다리게 합니다. 올해의 단풍이 예년에 비해 화려할 것이라는 예보를 들었는데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듭니다. 아무튼 그래도 만추의 화려함을 기대해 봅니다.

  코비드 바이러스 팬데믹이 아직도 우리의 삶을 위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삶은 멈추지 않고 활기에 차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삶의 의욕은 위대합니다. 이러한 때 우리 주변에 두려움이나 병환으로 일상이 너무 고통스러운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거룩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입니다.

  결국 교회 공동체는 혼자만 잘 살고자 하는 현세구복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톨릭(Catholic)” 이라는 이름의 의미입니다. 바로 ‘보편적 구원’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누구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는 여정의 공동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우리의 삶으로 보여지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하느님을 믿게 된다면 이 보다 더 복음적인 삶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기적 이야기로 예수님께서 눈먼 거지를 치유해주시는 이야기입니다. 눈먼 거지는 두 가지의 고통을 갖습니다. 당연히 육체적으로 불편합니다. 따라서 스스로 경제적 활동을 하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인 거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눈먼 거지의 부탁을 안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눈먼 거지의 고백은 엄청난 고백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코 10: 47)

  여기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유태 전통 예언인 구세주이신 메시아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오 1: 1)

  눈먼 거지는 당장의 자신의 눈을 고쳐달라고 애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메시아로 알고 자비를 구한 것입니다. 이는 구체적 청원을 넘어 온전히 하느님의 사랑에 귀의한 것입니다.

  이 믿음에 감동한 예수님은 그를 불러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봅니다. 그제서야 눈을 뜨게 해달 라고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의 눈을 뜨게 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코 10: 52)

  오늘 복음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다른 기적의 이야기와 달리 눈먼 거지의 이름을 정확히 명시했다는 것입니다. “티메오의 아들 바르티메오.” 이는 그 거지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부르는 칭호가 예사롭지 않은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적을 통하여 우리의 눈도 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적 시각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보편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우리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참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힘든 시대가 곧 끝나고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시작되길 기대하지만 그리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돕고 용기를 돋구어 주고 희망을 북돋아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변이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자비의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자비의 눈을 갖은 공동체이길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 식구들 모두가 이러한 눈으로 세상을 보며 인고의 시대를 견디고 매일 나름의 기쁨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귓가에 맴돕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코 10: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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