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21년 9월 12일

오늘은 연중 제24주일 9월 12일입니다. 가을의 햇살이 아름다운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구월입니다.

  그런데 어제 9월 11일은 9.11사태의 20주년이 된 날입니다. 20년 전 어제는 화요일이었습니다. 날씨가 참으로 아름다운 아침으로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날 아침 출근하다 날씨가 너무 좋아 버스에서 미리 내려 커피를 사서 마시며 걸어서 회사에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20년 전 어제는 그렇게 참으로 아름다운 가을 아침에 비극의 날벼락이 난 것입니다. 테러리스트의 만행으로 트윈 타워는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리고 수많은 인명이 그 잿더미 속에 묻혀버리는 잔인무도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20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당시 저의 첫 본당에도 8분의 희생자가 있었고 그분들의 장례 때마다 온 신자들이 참여하여 애도를 표하며 서로 위로하기도 했었습니다. 비극 속에도 하느님은 계셨고, 하느님의 사랑은 서로 아픔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면서 더 따듯하게 드러났습니다.

  악마는 어디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에 대한 악마의 악의적 행동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는 역설적 구원의 신비를 경험합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에서 베드로는 “스승님[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예수님의 정확한 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은 같은 장면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 16) 그리고 루카 복음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9: 20)

  오늘의 복음은 공관 복음 모두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비슷하게 나옵니다. 구조적으로 베드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고백과 함께 예수님은 당신의 다가오는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어떻게 당신을 따라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구세주 그리스도임을 알고 믿은 이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은 죽음도 불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저 뜨뜻미지근하게 믿는 신앙이 아니라 박해가 오고,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실이 세상 적으로 참으로 위험한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의 도움으로 위험을 피하고 어려움 없이 고통을 위로받기 위한 신앙을 넘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앙을 따름으로써 세상 적으로는 어려움에 처하고 때로는 죽음의 위험에 처하더라도 결국 하느님께 영광으로 드리며 절대적인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참 어려운 신앙에 초대받았고, 그 초대에 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좁은 문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이를 잊고 넓고 편한 문을 기대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이미 잘못된 선택입니다.

  세상적인 유혹에서 하느님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매번 어렵습니다. 매번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고민하면서 하느님을 선택하려는 노력이 하느님의 눈에는 예뻐 보이실 것입니다. 마치 걸으려고 일어서다 매번 쓰러지는 아기가 예쁜 것처럼……따라서 그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구원받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릅니다.  그 무게에 지쳐 쓰러지고, 십자가 앞에서 주눅 들어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십자가를 떠나지 않는 우리의 모습에 예수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도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힘든 이에게 힘을 보태주고 슬픈 이를 위로하려 하는 노력이 아름답습니다.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엄마. 난 커서 엄마한테 장가 갈 거야! 또는 나는 아빠한테 시집갈 거야! 하는 아이의 거짓말(?)에도 흐뭇하게 웃는 부모님처럼 우리의 실수와 실패를 알면서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우리의 결심에 흐뭇하게 웃으시는 하느님의 미소가 좋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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