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s Desk

2019년 3월 1일

지난 목요일 밤 지난 1년 동안 한국학교와 방과후 학교 그리고 Summer School 운영으로 우리 본당을 위해 애써주신 유진 수녀님의 다른 소임을 위해 한국으로 지난 목요일에 가셨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일을 해주신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유진 수녀님을 위해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진 수녀님 송별을 마치고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밤하늘을 보니 조명으로 붉게 비추는 관제탑 위로 구름에 살짝 가린 달이 마음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바꾸려 같이 동행한 사목회 회장님과 부회장님에게 한국의 동창들과 나눈 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며칠 전 동창 모임 카톡방이 갑자기 시끄러워 들어가 보았더니 한 친구가 출장 차 간 경포대에서 찍은 슈퍼 문 보름달을 올렸습니다.그랬더니 너도 나도 부럽다고 문자를 보냅니다. 그리고 한 녀석이 “경포대에는 달이 다섯 개가 뜬다는 데 사실인가?” 하고 물어봅니다.

“어떻게 다섯 개야?”하고 또 다른 녀석이 물어보니 “하늘에 하나, 경포호 위에 하나, 술잔에 하나, 마주한 친구의 두 눈에 비춘 달, 이렇게 다섯 개의 달이 뜬다네.”하고 답합니다.

이에 경포대에 간 친구가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달은 세개 밖에 안 떴네!” 하고 답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진이 뜹니다.

이번에는 만주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의 사진, “만주의 붉은 달도 경포대만큼이나 아름답다네. 근데 여기는 하늘에 한 개 밖에 없어……”

뜬금없이 달 사진 하나로 시작된 수다 끝에 한 녀석의 문자가 화제를 바꿉니다. “친구들, 축하해 주게. 올 삼월에 내 큰 딸이 시집가네……” 이 한마디로 우리 모두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모두 같은 문자가 함박눈 내리듯이 카톡 창에 뜹니다. “축하해!” “축하해!” “축하해!” “축하해!”……

이렇게 달 하나로 오십 중반의 사내들이 공간을 초월하여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세파 속에서 시달려 단단해진 가슴에 학창시절의 그래도 좀 더 순수했던 시절의 부드러운 가슴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빙그레 웃어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리디여린 마음들이 이런저런 상처와 세파에 시달리며 단단해져 갑니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친해지던 열린 마음들이 점점 닫혀갑니다. 삶의 경험은 믿으려는 마음보다는 경계와 의심으로 채워진 마음을 지혜라 착각하게 합니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아가며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경쟁하며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며 생존의 본능을 극대화하는 세상입니다. 여린 마음이 상처받고 손해 보고 불이익을 당하는 세상이라고 한탄합니다. 그래서 더 단단한 마음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요구합니다. 그것이 성공법이라 포장하여 각박한 생존법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전혀 다른 삶의 진실한 지혜를 전해줍니다. 바로 원수를 사랑하고, 세상적 이익보다는 손해를 보고,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바보”처럼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학창시절 가슴 뜨겁게 받아들이던 이 아름다운 말이 이제는 무겁게 우리의 가슴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짐짓 고개를 끄덕이며 점잖게 동의하나 속으로 현실적이지 않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나만이 손해를 볼 수 없다고……

그리고 세상을 탓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탓합니다. 스스로의 가슴에 화를 가득 채웁니다. 세상은 어지럽고 이기적이고……

예수님의 세상은 아직도 아름답고 자비롭고 살만한데 우리의 세상은 언제나 이기적입니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에 이롭다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귀에 거슬리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데, 현실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달콤한 말만 듣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언제나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단단해진 가슴이라도 그 속은 아직도 여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무한경쟁 속에서 닳고 닳았어도 그 깊은 속은 선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좋고 선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남 험담으로 수다를 떨기보다 주변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떠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고상하게(?) 책을 읽고 토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것들 속에 아름다움을 찾아 그 느낌을 나누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흔함 속에 가려져 우리가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참 아름다운 것들로 꽉 차 있습니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루카 6:38) 이 말씀으로 우리가 아름다운 것들을 이야기할 때 우리도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오늘 복음으로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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