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18년 3월 25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하느님의 도성이라고 불리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통치 기반을 다진 곳으로, 이스라엘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계약의 궤를 모시고 있으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성전이 자리하고 있는 거룩한 도시입니다.
이 엄청난 도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으러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자리에 자기들의 옷과 나뭇가지를 깔아 놓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힘껏 외칩니다. 마치 영웅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온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환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예루살렘 백성들의 마음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을 환대하는 많은 백성들처럼 기쁨에 가득 차 있지 않으실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당신을 환영하던 그 백성들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기쁜 마음이기보다는 담담하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마태 23,37-39) 이렇게 예루살렘을 두고 탄식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당신을 반기는 그 많은 군중들을 보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당신의 마지막 여정인 고통으로 들어서는 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 남은 것은 더 이상 많은 군중들을 가르치는 것도 표징을 일으키는 것도 아닙니다. 고통과 죽음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아버지께 간절히 청하실 만큼, 두려운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기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기쁘지만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려둔 채 달아나고 그분을 맞이하던 군중들은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칩니다. 조롱을 하고 옷을 벗기고 결국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울부짖으시지만, 당장 하느님께서는 응답조차 들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분을 환영하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모습 저편에, 홀로 고독하게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뇌하고 계신 예수님의 심정을 떠올려 봅니다. 군중들을 피해 달아나고 싶고, 아버지께서 뜻을 거스르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싶지는 않으셨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생각들을 뒤로하신 채, 당신께서 완수해야 할 아버지의 사명을 안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날이면서, 우리를 위해 고통을 받으신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성주간을 지내면서 예수님의 수난을 더욱 깊이 묵상해 보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왜 고통을 받으셔야만 했는지, 예수님의 고통이 우리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수님의 고통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등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시기에 와 있는 만큼 은총이 가득한 성주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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